안녕하세요, 도비입니다.
34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편 잘 들으셨나요?
책이 정말 재밌어서 감질클럽멤버들이 극찬을 했는데요. 청취자분들께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책 소개하면서 빠진 부분이 있어 추가로 얘기해드리려 합니다. '김혼비'라는 이름은 작가의 필명이라고 하네요.
영국의 작가 '닉 혼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축구 에세이 '피버 피치'의 저자이자 축구광으로 유명한 영국에서 아주 잘 나가는 작가라고 합니다.
작가님의 글이 너무 좋아 김혼비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닉 혼비를 아시는 분이라면 눈치채셨을 법도 하네요.
책에 관심이 많은 우리 감질클럽 청취자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 같은...
혹시 저만 몰랐나요?^^:
책에 대한 애정을 자꾸만 이야기 하게 되는데요. 책을 읽고 너무 마음에 쏙 들어 그날 받은 감명과 깨달음을 일기에도 적어두었더라고요.
그날 일기에 조금 살을 붙여 조금 긴 글을 써보았습니다.
책에 대한 저의 애정이라고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발레와 합기도 -
다섯 살 무렵, 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간 발레 학원에서 다리를 찢던 중이었다. 다리가 쭉쭉 찢어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내 다리는 90도 이상 찢어지지 않았다. 그날로 발레학원은 끝이었다. 생각해보면 왜 굳이 발레여야 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태권도 학원도 있고 축구 교실도 있었지만 엄마는 나를 그곳에 보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신 남동생이 태권도 교실에 갔다가 삼일 만에 그만두었다. 늘 나보다 심약하고 피부가 하얗던 동생이었다. 당시에는 나보다 다리도 더 유연했다. 만약 동생이 발레학원에 가고 내가 태권도 교실에 갔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하게 된다.
스무 살 이후 여러 번 요가학원와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했다. 운동을 하고 싶었고 가끔은 체중 감량을 위해서였다. 요가도 필라테스도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유연했을 다섯 살 무렵에도 찢어지지 않던 다리가 성인이 된 뒤 찢어질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요가와 필라테스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운동은 한강을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한강에서 조깅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음에도 어찌할 줄 몰랐던 내 지난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날, 태권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나의 운동 선택지에 태권도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대가 변해서인지 내가 변해서인지 둘 다 인지는 알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태권도가 나에게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요가와 필라테스처럼 몸매를 가꾸기 위한 운동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고도 육개월이 지났다. 생각만 하고 꾸물대며 집 근처에 있는 학원 조사만 육개월 째였다.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하기에 꽤 큰 결심이 필요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연히 이 책을 접했다. 그날 바로 집 근처의 합기도 학원에 등록했다. (태권도 학원이 없어서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합기도를 배우러 다닌다고 하자 친구들과 가족들은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합기도가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학원에 간 첫날, 쌍절곤을 휘두르고 낙법을 배웠다. 놀랍게도 재밌었다. 달리기를 잘하고 팔씨름에 져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요가보다 합기도가 더 잘 맞는 운동이었다.
돌이켜보면 꼭 운동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이 강요한 수많은 ‘당위’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던가. 나와 맞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슬프게도 그러한 당위가 내 안에 내재되는 데는 사회화가 한몫했다. 서른 살의 엄마가 나에게 가르칠 운동으로 발레밖에 생각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철이 들고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당위가 쏟아졌다. 화장을 해야 하고, 나서지 말아야 하고, 여자가 하기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등등. 나도 모르게 젖어드는 당위들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내가 아닌 ‘나여야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나의 욕망과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합기도를 등록하고 오면서 다짐했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성질이 더러워도 괜찮은 ‘나’로 살겠다고 말이다.
지난주에 합기도 학원에서 승급시험을 봤다. 초등학생들과 같이 흰 띠에서 노란 띠로 승급을 했다. 중학생, 초등학생들과 같이 수련을 하는데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요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빠지던 내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출석했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봉을 휘두르고 호신술을 배우느라 굳은살이 베기고 다리가 굵어져도 상관없다. 검은 띠를 맨 나의 모습이 훨씬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방송에서 만나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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