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매주 다양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여기는 감질클럽입니다.
방송이 끝난 뒤

[희조]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82년생 김지영의 공통점?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8. 6. 2.



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28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들으셨나요

저번 '문학을 읽는다는 ' 읽은 이후 문학을 읽을 소설이 인물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해서 읽게 됐어요. 이번 글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서술 방식에서 제가 인상깊었던 부분을 짚어볼까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과 비교하면서요. 

첫째로 소설의 특징은 제목에 있습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제목 어떻게 보십니까? (아무 생각 없으신가요?) 이반 일리치는 (물론 한국어 이름은 아니라 생소하지만) 특별한 공인이나 명사의 이름이 아니라어느 누군가’ ‘누구라도 좋은평범한 일반인의 죽음을 나타냅니다. ‘어느 남자의 죽음이라고 했어도 좋았겠지만 그것보다는이반 일리치라는 진짜 있을 법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오는 것이 감정이입하기 쉽겠죠.  <이반 일리치의 죽음> 평범한 일반인의 이야기인 하면서 우리 주변 많은 사람의 이야기임을 드러내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도 대표적인 예라고 있겠습니다. 

이런 소설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이 주인공을 대하는 태도입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82년생 김지영> 모두 굉장히 건조하고 무심한 문체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생각과 감정을 전지적 작가 시점을 활용해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1인칭 주인공 시점마냥 주인공의 감정에 놀아나진 않습니다. 대신, 주인공들의 생각과 감정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오히려 조금 거리감을 두면서 묘사하여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사실 주인공을 관찰하는 소설 속의 다른 인격체가 있는 읽히기도 합니다. 이런 쓸데없이 자세하지만 공감을 구걸하지는 않는 서술 방식은 쓰인 걸까요? 

책을 읽으면서 저는 헷갈렸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경우이반이 조금 속물적으로 살긴 했지만 그렇게 나쁜 짓을 것도 아니잖아?’ ‘가만 보면 그때는 그렇게 사는 같은데 하고 이반 일리치를 감싸게 됩니다<82년생 김지영> 경우김지영이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회사도 여자라고 차별한 것은 아니지 않아?’ ‘단지 억울한 일만 모아놓다보니 김지영의 삶이 불행해보이는 아니야?’ 하고 김지영의 마음에 선뜻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 경우는 그랬습니다. 김지영에 바로 자신을 동일시하고 공감하는 독자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헌데 이렇게 독자가 어리둥절해하거나 주제가 뭔지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그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슬며시 드러납니다. ‘이반 일리치와 주변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는 이미 그런 물질적 욕망과 속물적 사고방식에 이미 너무나 포섭되어 있지’ ‘김지영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했듯, 우리는 이미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 너무나 익숙해 구조 밖에서 사유할 없는 거야 같이 말이죠. 

보통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다루는 소설들 쓰인 소설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을 낯설게 바라볼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같은 편인 하다가 멀리 달아나고 독자를 우롱하는 같다가 손을 내미는 미꾸라지 같은 서술 방식이 힘을 극대화시켜주죠. 제게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