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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주 다양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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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푸린의 문학 쌀-롱 (감질클럽 멤버들 시 모음有)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8. 8. 12.


<눈알 없는 사람>_푸린




도로록 도로록

입 안에서 하나의 포도알을 굴린다.

요리조리 입 안을 휘저으며 얄미우리만치 제멋대로 움직이는 포도 알을 입 안에서 굴린다.

탱탱한 과육을 느끼며 새어 나오는 달콤함을 혀끝으로 눌러본다.


휘적휘적

눈알 없는 사람이 자신의 눈알을 찾기 위해

더듬더듬 앞을 기어간다.

자신의 눈알이 먹히는 지도 모른 채.


톡 깨물자 과즙이 새어나온다.

입 안을 감도는 달콤함에 취한 듯 단숨에 몽롱해진다.


무언가를 찾는 손짓이 더 격해진다.

달콤함 역시 배가 되어 간다.

버둥거리는 손끝이 저려올 만큼 달디 달다.

그는 손짓을 멈추고 눈알을 음미한다.

달달한 과육을 모두 먹자 딱딱한 씨가 남는다.

그는 오도독 씨를 씹는다.

쌉싸래한 맛이 입 안을 맴돈다.

그는 있지도 않은 눈 알 주변 눈 두덩이를 더듬거리다 이내 입술을 훑는다.


잘게 씹힌 씨를 뱉은 눈알 없는 사람이

느릿느릿 앞을 기어간다.

입 안에 남은 달콤함과 쌉싸래한 씨앗의 쓴 맛을 되새기며.






<새들은 지하철역을 좋아한다>_마브





저멀리 주황빛 하늘에 

날개 모양 도장이 찍힌다.

푸드덕 푸드덕

찍찍찍찍


부지런한 집주인 들어온다

댕댕댕댕댕댕

철컥철컥

끼이익 끼익 촤악


나뭇가지 대신 난간

나뭇가지 대신 선로 지붕

나뭇가지 대신 표지판

나뭇가지 대신 쓰레기통


앉았다가 날다가

혼자였다 모였다가


집주인도 오지않는 

까만 밤에도


쉬다가 춤추다가

놀다가 졸다가


새들은 지하철역을 좋아한다.







<2차 세계 대전>_희조




미안하지만

내 인생이 더 힘들어

내 화요일이 더 힘들어


미안하지만

얄미운 동료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주어 없이 질문하는 사장님 목소리가

그 어떤 죽어가는 사람들의 시름보다

더 듣기 힘들어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떤 시인의 노랫소리도 아름답게 들리지 않아

상처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미안해 보르헤르트

차라리 지금 안 만났다면 좋았을 걸

그치만 나는

잿더미가 된 고향집도

굶주리는 아이들과 아낙네도

너의 이별 얘기도

오늘은 궁금하지 않아

아직 화요일밖에 안됐으니까





[음성으로 시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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