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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우진] 합리적인 선택과 인간적인 선택의 사이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8. 4. 24.

 

안녕하세요. 우진입니다

25가만한 당신 최윤필은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편집이라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는데, 감자껍질파이북클럽을 아껴주시는 청취자분들께서 듣기 불편하셨을까봐 걱정이 드네요. 앞으로는 보다 매끄러운 방송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지켜봐주세요. ^.^



가만한 당신에 기록된 35명의 삶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 한 위인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꿨다거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구하는, 흔한 영웅들의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삶 자체는 평범한 사람들에 조금 더 가까운 듯합니다.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개인적인 욕망과 도덕적인 행동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며, 불합리한 세상의 거대한 벽 앞에서 무기력하게 좌절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가만한 당신들이 고군분투했던 세계는 선악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영웅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복잡다단한 힘들이 선악의 기준을 뒤흔들어놓는 세계에 가까워 보입니다. 자연히 그들의 행동에 담긴 인간적 고뇌의 농도는 더욱 짙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불합리를 강요하는 세계에 맞서 결코 가만하지않았던 이들에게 제가 깊이 끌렸던 이유였습니다.

 

책에 소개된 35편의 일화 중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편은 <‘챌린저참사 30, 그들이 남긴 것들>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양심이란(정확히는 죄의식’)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하는 대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제멋대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대참사 이후, 담당 엔지니어였던 로저 보졸리와 로버트 이블링은 기술자로서 사고를 예측했으나 막지는 못했다. 둘은 사고 이후 서로 대조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삶을 꾸려갔다. 보졸리는 고발하는 삶을, 이블링은 은둔하는 삶을 살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비슷한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은 왜 참사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 차이를 만들었던 요소가 혹시 죄의식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삶은 챌린저호 참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냉전이 끝 무렵이던 1986128, 비정상적으로 추웠던 플로리다에서 소련과 우주 진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발사합니다. 임무를 맡은 기관은 유명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었습니다. 소련의 콧대를 꺾어놓으려는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승무원 7명을 태운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미국 전역의 국민들, 특히 학생들이 폭발로 끝나 버린 챌린저호 발사 장면을 CNN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회적 참사가 그렇듯, 챌린저호의 폭발도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NASA와의 계약으로 챌린저호 로켓 추진체 제작을 맡았던 업체 모턴 사이어콜의 기술진들은 연료 누수를 막는 고무 부품 O-ring의 결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나친 추위로 손상된 O-ring이 제 역할을 못해 연료가 누수될 것이고, 새는 연료가 로켓 추진체가 내뿜는 화염과 반응해 폭발할 것이라는 결론도 예측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진들은 발사를 미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특히 수석 엔지니어였던 로저 보졸리는 발사 전날에도, 심지어 발사 10여분 전에도 일정을 미뤄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NASA와 사이어콜의 경영진은 이제는 공학자의 모자를 벗고 경영자의 모자를 쓸 때라며 발사를 강행했습니다.

 

우주왕복선이 폭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O-ring의 결함이었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참사 이후, 진상조사단 로저위원회에 속해 부품 결함을 밝혔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NASA경직된 관료문화와 안전불감증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다고 꼬집고, 보고서에 나사가 우주선 승무원과 러시안 룰렛을 벌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미 발사 일정이 두 차례 늦어졌다는 사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챌린저호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 더 넓게는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NASA가 한몫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NASA의 경영진을 압박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역으로 이는 기술진들이 무력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로저 보졸리와 로버트 이블링은 핵심 부품 설계에 하자가 있음을 알았고, 높은 가능성으로 폭발을 예상했으며, 결과적으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위로부터 내려진 결정을 되돌릴 만큼의 권한을 가진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막지 못했다는 것, 이들의 남은 인생을 괴롭게 만들었던 죄의식의 근원이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선택지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기술진들이 직장을, 아니 인생을 걸고서, 예컨대 핵심부품을 고의로 파괴하는 식으로라도 발사 강행에 반대했더라면, 참사는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는 도덕적으로는 가장 옳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NASA의 하청업체 직원에 불과한 사람들이 저 수많은 이해관계의 견고함을 밀어내고 발사를 미룬다는 것은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 입니다. 더욱이 발사를 연기해 막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발사를 지연하는 데서 생기는 갖가지 책임도 뒤집어 써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이런 이유로 언제나 사고가 터진 뒤에야 문제를 고칠 수밖에 없다는 게 인간사회의 비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눈뜨고 참사를 지켜봐야했던 것은,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그것이 죄책감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사고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경영진 등의 관계자와는 다르게, 보졸리와 이블링은 기술적으로 꽤나 정확하게참사의 가능성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저 보졸리에게도 로버트 이블링에게도, 그리고 이들을 두고 사이어콜 공장 주변에 살인자들이라는 낙서를 남겼던 이들의 정서에도 모두 알면서도 끝내 방치했으니 죄인이다라는 심리적 판단이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했던 것은 두 사람이 죄의식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도덕적인 신념이 꽤 강했을 것 같은 로저 보졸리는 죄의식과 싸우는 데 전념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NASA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맞서 내부고발자로 적극 나섭니다. 그는 내부고발자로 몰려 NASA와 경영진, 직장 동료들로부터 핍박을 받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후 마음을 추스른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300여 차례 국내외 대학과 연구소 강연으로 기술자의 윤리와 책임을 전도하며 남은 인생을 보냅니다. 온갖 고통에도 불구하고 진실 공개에 힘썼던 보졸리의 삶은, 죄의식의 관점에선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 역설적으로 내부고발에 적극 나서는 행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식과 싸웠던 보졸리와 달리, 로버트 이블링은 환경운동에 전념하며 은둔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내내 자신을 감추며 살았던 이블링은 분노를 내면화해 자책으로 스스로를 고문했고, 89년 무렵부터 지역 철새 보호 등 환경활동가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죄의식과 평생 함께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셈입니다. 보졸리와 비교할 때 그의 삶은 조금 나약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저는 이블링의 선택이 더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게는 챌린저호 참사를 막지 못한 과거가 씻을 수 없는죄책감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죽기 두 달 전에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는 그의 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이블링은) 자신이 지난 세월 혼자 감당해야 했던 자책과 죄의식을 울먹이며 토로했다

나는 좀 더 노력할 수 있었고,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 

신은 그 일을 내게 맡기지 않았어야 했다. 나중에 신을 만나면 따져 물을 거다. ‘왜 나였냐?’, ‘당신은 패배자(loser)를 선택했다.”



[로저 보졸리]

[로버트 이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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