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22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 잘 들으셨나요?
다음주에 올라올 23화 1부 오프닝에서 푸린씨가 독서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었어요. 저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 때문이라고 답했고 요즘에는 책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가 있으니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보면 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은 줄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그럼 책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미가 없고 덜 유익한 걸까? 예전에는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에 볼 게 책밖에 없었는데 이제 기술의 발전에 의해 책의 필요성을 점점 없어지고 고물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테리 이글턴은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에서 우리가 문학을 대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실례로 ‘폭풍의 언덕’을 읽고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상으로 보여주고 그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합니다. 기억이 안나시는 분들을 위해 그 대화를 다시 발췌해볼게요.
A: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가 뭐 그리 대단한지 모르겠어. 그 커플은 그저 시시한 일로 말다툼하는 애들 같은데
B: 글쎼. 그건 실은 관계라고 말할 수 없어. 그렇지 않아. 오히려 자아들의 신비스러운 화합이라고 할까 그건 일상적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이지
C: 어째서 히스클리프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짐승 같은 녀석이야. 바이런 식의 영웅이 아니라고 사악한 놈이지.
A: 좋아. 그럼 누가 히스클리프를 그렇게 만들었지. 물론 그 언덕에 사는 사람들이야. 그가 어린애였을 때는 괜찮았어. 그가 캐서린의 남편감이 못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기때문에 괴물로 변한 거야. 그는 적어도 에드거 린턴 같은 겁쟁이는 아니지.
B: 그래 린턴이 좀 줏대가 없긴 해. 그렇지만 그가 캐서린을 대하는 방식은 히스클리프보다 훨씬 낫잖아.
테리 이글턴은 이 대화를 두고 이렇게 평합니다. ‘폭풍의 언덕’에 대해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 토론을 듣는다면 이것이 소설에 대한 대화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냥 또래 친구 뒷담화를 하는 듯한 대화로 들을 것이다. 토론자들은 픽션을 실재와 혼동하고 있으며 소설 속 인물에 대한 화자나 작가의 태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시 한번 저 대화를 읽어봅니다. 물론 소설을 읽고도 저렇게 인물이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많이 애기하긴 하지만 만약 저게 드라마나 영화 - 특히 드라마 를 보고 한 대화라면 어떨까요? 그리고 누가 그것에 대해 ‘넌 드라마를 볼 줄 모르는 놈이군’하곤 지적한다면 어떨까요?
‘그게 왜?’ 라며 발끈할 드라마 시청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논할 때 우리는 그것의 예술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드라마는 스토리와 인물 그 자체의 흥미도를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정이 재미있다던지, 스토리가 공감을 자극한다던지 스릴 넘친다던지, 그런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우리가 드라마를 대하는 태도는 요즘 대중들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잘 짜여진 드라마-흔히 웰메이드 드라마로 따로 분류되긴 하지만-가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소재나 캐릭터 자체를 내세우는 드라마가 인기를 끕니다. 공감을 얻는 것은 1차적으로 중요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노골적인데도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이는 드라마뿐만이 아닙니다. 영화나 책 시장도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비평 문화가 사라졌다는 테리 이글턴의 말이 떠오릅니다. 물론 리뷰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더 이상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지 가려내는 문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집중력과 감식안이 상대적으로 높게 요구되는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감상을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로 점점 옮겨갑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게 된 이유에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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