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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고래] 언론인이 되고싶은 고래의 작문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8. 2. 11.

안녕하세요. 언론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한 상태에서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 먹은 고래입니다. 방송국 입사를 준비한 지 벌써 2개월 차가 됐네요. 이번 20화에서는 박성제 기자의 언론과 권력을 읽었습니다. 언론에 문외한인 제게 저널리즘의 중요성과 역할을 대담을 통해 쉽고, 명확하게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MBC에서 일하고 있는 제주씨가 게스트로 오셔서 더욱 풍성한 방송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번방송 오프닝에서 제주씨가 '파파미'프레임으로 저를 놀렸는데요. 파파미 에피소드 중 하나였던 '토익과 관련된 일화'로 글을 한 편 썼습니다. 요즘 다니고 있는 한겨레 문화센터의 작문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부족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다음 발제 때 더 나아진 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제: 내 짧은 인생의 반성문

며칠째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영어 듣기 대본이 흘러나온다. 토익시험을 보는 날이다. 곧 방송국 공채가 뜬다는 소식에 급하게 시험을 신청했다. 토익 점수는 방송국 서류전형을 위한 필수 스펙이다. 취업 준비 초년생이 갖춰야 할 필수사항은 참 많다. 서류라도 넣어보고 싶은 욕심에 2주간 잠을 줄여 벼락을 쳤다.

고사장인 신도림 중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토익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고사장 건물로 향하고 있다. 나도 걸음을 재촉한다. 그때, 뒤 쪽에서 꼬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도와주세요. 엄마가요. 없어졌어요. 도와주세요.”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도 앞만 보고 걸었다. 입실시간이 5분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거리는 멀어지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뒤를 돌아 봤다. 6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다. 눈가가 흠뻑 젖어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아이를 스쳐 지나가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이는 혼자서 계속 울고 있다. 아이를 도우러 가야 하나. 토익 시험을 보러 가야 하나. 분명, 내 입실시간도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머리가 아찔하다. 

그러고 보면 짧은 생 동안 이 같은 선택의 순간은 꽤 많았다. 하지만, 답은 일정했다. 나는 항상 토익시험을 보러 들어갔다. 중학생 때, 특목고에 떨어졌다. 넌 친구를 좋아해서 떨어진 거야. 부모님과 선생님은 그렇게 진단을 내려줬다. 나는 생각했다. 특목고와 친구를 모두 가질 순 없는 거구나. 대입 재수가 확정되고 나서 들은 이야기도 비슷했다. 네가 연애만 안 했다면 재수 안 했을 거다. 이번엔 대학에 붙은 친구들까지 합세해서 진단을 내렸다. , 대입과 연애도 함께할 순 없는 거구나. 그들의 진단 덕분에 나는 목표가 있으면 한 눈 팔아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내가 배운 삶을 잘 사는 방법이었다.

한 눈을 팔면 목표를 달성하기 힘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경주마의 눈에 차안대를 씌우는 것은 말이 앞만 보며 달리게 하기 위해서다. 말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쓰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다고 한다. 나도 목표를 위해선 차안대를 써야 했다. 물론 차안대를 쓴다고 해서 경주에서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 말고 주변 사람들도 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벗을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평균으로 골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지에 대해 의문이 든 것은 이미 고통이 찾아오고 난 뒤였다. 대학교 졸업이 다가오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할 무렵 우울증이 찾아왔다. 주변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지쳐버린 나를 달래줘야 할지, 또 다른 경쟁을 위해 달려야 할지. 불안했지만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났다. 친구들 대부분이 취업을 해서 번듯한 직장을 얻었다. 불안하진 않았다. 나도 수십 권 쌓인 책들 속에서 얻은 게 있었다. ‘차안대를 벗어야겠다.’

책과 지냈던 1년은 지난 삶을 반성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게 해준 계기였다. 차안대를 벗자 많은 것이 보였다. 앞으로 가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적어도 고통스럽지 않음은 분명했다. 그동안 오로지 목표에만, 속도에만 집착하며 산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나의 내면을 돌보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주변을 보고, 가끔은 멈추기도 하는 삶이 내게는 더 어울리는 삶이었다. 앞으로는 나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사장으로 가던 걸음을 멈췄다. 꼬마 아이를 바라봤다. 나에게 이는 단순히 도덕적 갈등 상황으로 만 여겨지지 않았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 이를 외면하고 목표를 위해 토익을 보는 것. 어딘가 익숙한 두 선택지였다. 우울증이 찾아왔던 그날이 떠올랐다. 내면의 눈물을 무시하고, 목표를 위해 달렸던 내가 떠올랐다. 이번 토익 시험을 안 보면 방송국에 서류 지원조차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외면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또다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도의적인 이유를 넘어, 그 순간 나는 시험 보다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 꼬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저 그러고 싶었다.

아이에게 다가갔다.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가 울음을 멈춘다. 시험 전에 먹으려고 사온 초콜릿을 건네주며 말했다. “? 괜찮아. 형이 너랑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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