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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푸린] 나는 나로 살고 있는걸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8. 1. 21.

한평생 자신이 한 짓을 모르고 살아왔던 토니. 토니가 자신의 과오를 알아버렸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자신이 했던 행동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된 토니.

결국 그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과거를 회고하며 괴로워하겠죠.

또 결국 이 사실조차 잊으며 망각 속에 살아갈 수도 있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으로 짧은 글을 지어보았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영철은 한참 망설이다 허름한 폐공장으로 들어가 어두컴컴한 곳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겨우겨우 ‘가면가게’를 찾았다.

“저기...‘만능 가장’가면 재고 있나요?”

영철은 얇디얇은 샘플가면을 가리키면서 험악하게 생긴 점원에게 물었다. 점원은 조용히 말하라는 듯 검지를 입 앞으로 갖다 댔다. 가면 앞 종이에 적혀있는 효과는 ‘회사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그 어떤 상사의 비위를 맞출 수 있는 굳은 심지, 주말에도 소파에 누워있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상함’이라고 적혀있었다. 딱 영철이 원하는 가면이다.

“11만 8천원 계산이구요, 현금인 거 아시죠? 저희도 들키면 하기 힘든 장사라. 절대 어디가서 입 밖으로 가면 얘기 하지 마시구요.”

“네, 여기요. 감사합니다.”

“아, 잠시 만요!! 이 가면이 효과는 참 좋은데, 부작용이 심해요. 전에 사신 거 보다 두통을 더 느끼실 수도 있어요. 효과가 좋을수록 머리를 옥죄어 오는 게 더 심하거든요.”

영철은 대충 알겠다는 대답 후에 폐공장을 빠져 나왔다. 머리가 좀 아프면 어떤가,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완벽하다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영철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영철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던 가면을 벗어 가방에 넣고 신상 가면을 썼다. 역시 새로 나온 가면이라 그런지 착용감이 다르다며 감탄하던 영철은 집으로 들어갔다. 전에 들어가면 한숨부터 나왔던 집과는 확연히 다르다. 영철의 가면의 효과인지 예전과 다르게 자상한 모습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투가 사사건건 시비만 거는 아내와 불평만 늘어놓는 아이들을 크게 만족시켰다. 이 모든 것이 가면의 힘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밥을 씹던 영철의 얼굴이 크게 구겨졌다. 가면이 옥죄어오면서 영철의 관자놀이를 세게 누른 탓이다. 밀려오는 고통에 어금니를 꽉 깨물며 애써 아내의 말에 답하는 영철이었다.

회사에 출근한 영철은 가면 덕분인지 아침 지옥철에서도 끄떡없었다. 매일 영철을 죽일 듯이 대하는 상사의 비위도 잘 맞춰주었다. 물론 속에서는 불이 끓었지만 예전 가면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영철이었다. 영철은 순간 밀려오는 두통에 악 소리를 내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통을 견뎠다.

“끝나고 회식하지, 오늘!”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지만 가면은 이성을 이긴다. 얼른 차장님 나이스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집에 온 영철은 평소와 다른 아내 정숙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역시 신상 가면의 힘은 아내도 바꾸는 것일까. 이름과 다르게 항상 정숙하지 못한 아내의 모습에 질려가던 영철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오늘 달랐다. 평소 화장기 없는 모습과는 달리 화장도 하고 옷도 차려입었다. 아이들도 하나같이 어쩜 말을 잘 듣는지 평소 알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철이 씻고 다같이 밥을 먹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아!”

영철이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걱정 돼 어디 아프냐고 묻자 아이들이 대답하려는데 정숙이 재빨리 대답을 가로챈다.

“아이들이 요즘 감기에 시달리더니 두통으로 왔나 봐요. 얼른 밥 먹고 약 먹고 자자.”

웬일인지 얼른 자라는 정숙의 말에 곧이곧대로 자는 아이들이 낯설면서 뿌듯하다. 다 내 가면 덕분이겠지.

 영철이 씻고 침대에 눕자 정숙은 그런 영철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만능 주부’가면과 ‘착한 어린이’가면을 무리해서 산 보람이 있다. 빙긋 웃으며 밀려오는 고통에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는 정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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