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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중백]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

by 중년백수 2017. 11. 21.

蝸角之爭 와각지쟁

蝸 달팽이 와 角 뿔 각 之 갈 지 爭 다툴 쟁

달팽이의 촉각(觸角) 위에서 싸운다는 뜻으로

①작은 나라끼리의 싸움

②하찮은 일로 승강이하는 짓

을 뜻함.


전국 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동맹을 맺었으나 제나라 위왕이 그 맹약을 깨뜨리자 몹시 노하여 자객을 보내어 위왕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했는데, 공손연(公孫衍)이 이견을 내놓았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하수인을 보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마땅히 군대를 보내 공격하는 것이 떳떳한

방법입니다.”


계자가 대뜸 반대하고 나섰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고 백성들은 몹시 불안할 뿐 아니라 비용 충당에 허덕이게 될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화자(華子)가 나서서 두 사람의 의견 모두를 신랄하게 공박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결론도 없이 논쟁만 지루하게

계속될 뿐이었다. 위왕이 몹시 짜증스러워하자, 혜시(惠施)가 말했다.


“대진인(戴晉人)이란 현인이 있습니다. 학문이 높을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에 매우 통달한 인물이므로, 그 사람을 초청해다 물으면

속 시원한 대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대진인이 조정에 불려와 혜왕을 만나게 되었다. 논란의 발단에 대해서 듣고 난 대진인은 매우 철학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풀어 나갔다.


“전하께선 달팽이란 미물을 아시겠지요?”


“알다마다요.”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 촉씨(觸氏)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 만씨(蠻氏)라는 나라가 있는데, 양쪽이 영토 분쟁을 일으켜 격하게 싸우는 바람에 전사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지 보름만에야 겨우 싸움이 멎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믿으시겠습니까?”


“원, 그런 터무니없는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그러시다면 이번에는 사실에 비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우주의 사방 위아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오.”


“물론입니다. 우주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정신을 무한한 공간에 두어 노닐게 하면서 이 유한(有限)한 땅덩이를 내려다본다고 할 때, 나라 따위는 있을까 말까 한 아주 작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렇겠지요.”


“그 나라들 가운데 위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이라는 서울이 있으며, 그 서울의 대궐 안에 전하가 계십니다. 또 한쪽에는 제나라가 있고 그 임금으로 위왕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무궁함에 비추어 볼 때 전하와 위왕이 전쟁하는 것이나  ‘달팽이 촉각 위의 촉씨와 만씨가 싸우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대진인은 거기까지만 말한 다음 자리를 떴고, 혜왕은 제나라와 전쟁할 생각을 버렸다.


 위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칙양(則陽)〉 편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방송중에 힘들때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내가 얼마나 티끌만한 존재인가를 깨달으며 위안 삼으라는 이야기를 할 때 인용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위나라 혜왕이 혼자 해탈에서 전쟁을 단념했다고 쳐, 근데 만약 제왕은 열심히 전쟁을 준비해서 위나라로 쳐들어와서 위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위나라 백성들을 도륙한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만약 북한이 남한을 도발하는데 남한에서 에휴.. 너희나 우리나 둘 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티끌같은 존재다. 그냥 평화롭게 지내자.. 하고 손 놓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운 좋게 북한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사의 수 많은 전쟁들은 절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 남한이 위나라 혜왕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조만간 북한의 무력에 점령당할지도 모릅니다(물론 주변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요). 그렇다면 '와각지쟁'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인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와각지쟁'이 내포하는 '자신의 하찮음을 깨닫고 우주의 거대함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1)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완전하게 나에게 있거나, 반대로 2)나에게 전혀 없거나, 이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3)누군가가 개입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문제라면 우주 속에서 자기존재의 하찮음을 느끼며 평화를 얻는 것은 순간의 현실도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팟빵에 댓글을 달아주신 반갑고 고마운, 그리고 요즘 너무 힘들다고 하시니 안타까운 고래고뤠님의 댓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

 회사생활이 너무 힘든데 퇴근후에도 상사들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아서 괴로워하고있었어요ㅜㅜ방송듣고 많은 위로가됐습니다. 큰우주에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해탈하게되기도하고 그러네요 ㅋㅋㅋ오늘 서점들러서 책사서 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헤헹 책톡오지구요지리구요

 고래고뤠님께서 직장 상사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십니다. 저도 참 슬픕니다 ㅠㅠ 정확히 직장상사들의 어떤 점 때문에 힘든건지는 모르겠으나 '폭언'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직장상사들이 상습적으로 폭언을 일삼는 상황이라고 말이죠. 이 상황에서 주변의 영향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나 스스로만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만드는 방법은 둘 중 하나 입니다.

1. 회사를 그만둔다.

2. 직장상사를 모두 죽인다.

 안타깝지만 2번은 현행법상 실행에 옮기면 몹시 곤란해집니다. 따라서 1번을 선택할 수 없다면 이 상황은 1)에서 이미 벗어났습니다. 보통 1번을 선택하기는 힘들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도 않겠죠. 생계를 위해서라든지 꿈을 위해서라든지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분명 존재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직장상사들이 절대로, 죽어도,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바뀔 인간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절대 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렇다면 상황은 2)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1번이나 2번을 선택한다면 '와각지쟁'의 이야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게 최선이니까요. 그 받아들임이 최악의 결론이더라도 우주의 품으로 숨어든다면 하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1번도 2번도 아니고 직장상사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아웅다웅 하고 있다면, 그로인해 스트레스 받고 있다면 우주의 품은 한때의 도피처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저 진상(상사)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계속 자신을 괴롭힐 테니까요.

 이쯤되면 늘 그렇듯이 사실 저도 제가 뭔 소릴 하고싶은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완전히 포기하지 못 할 문제라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현실에 맞서 부닥쳐야 할 것이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거나 다른 선택을 내리고 우주의 품속으로 피해 행복을 느끼는게 좋다. 정도랄까요? 네, 이렇게 말해놓고도 사실 잘 감이 안오내요. 아마 우리 인생에서 정확하게 칼로 자르듯이 결단내릴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음.. 더 고민하다가는 제가 불행해질 것 같습니다. 전 이쯤에서 저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포기한 뒤 우주의 품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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