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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고래] ‘제도적 망각증’ 그리고 ‘북클럽’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8. 13.

 

 

 

 안녕하세요.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1화 발제를 맡은 고래입니다. 0화와 1화 방송 재밌게 들으셨나요? 방송을 새로 팠다고 퀄리티가 갑자기 좋아지는 일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은 훨씬 편합니다. 방송명을 바꾸면서, 제가 왜 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더 편안해진만큼 청취자 분들도 더 편하게 방송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 오늘 글은 1 2부 마지막에 정신없게 언급했던 제도적 망각증에 대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도적 망각증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는 제도적 망각증이라는 흥미로운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인지 살짝 느낌은 오지만 흔히 쓰는 말은 아니죠. 인터넷에 검색해도 제도적 망각증이란 단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글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책에는 프랑스인 지젤 펠티에라는 여자가 소개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젤 펠티에는 정치범으로 잡혀서 라벤스부뤼크에서 5년간 지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강제수용소 생존자로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고향 프랑스에서는 누구도 수용소 수감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가는 물론 친구, 가족들조차 말이죠. 그들은 그것이 더 행복해지는 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이죠.

모든 것이 이제는 지난 일이다. 전쟁도 비시정부(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에 주재한 친나치 정권)도 민병대도 드랑시 수용소도 유대인도 모두. 결국은 당신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통 받지 않았나.”

 이것이 바로 제도적 망각증입니다. 마치 제도(사회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방식이나 기준 따위를 법률로 규정한 것.)를 시행하듯 망각을 권하는 것이죠. 지젤 펠티에는 프랑스 전체가 모든 것을 과거로 묻자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수용소에 대한 상세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냥 떠오르기 때문에 아닌 척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상처는 애써 떠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냥 떠오르는 것입니다.

 

통제의 수단

 우리 사회는 다양한 방면의 피해자들에게 망각을 권합니다. 가까이엔 세월호가 있습니다. 세월호 관련 기사가 나오면 이제 그만 할 때 되지 않았냐.’ 라는 댓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생각 없이 댓글을 쓴 들도 많겠지만 슬퍼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걸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좋은 방법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장은 모순이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슬퍼할 시간이 잊기 위한 시간일테고, 사실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할테니까요. 국가와 권력자들은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선봉에 있습니다. 바로 대중들을 본인들 마음대로 통제하기 위해서죠. 특히 국가의 과실로 일어난 일들에 있어서는 더욱 적극적입니다.

 혹, 시간낭비하지 않고 그저 과거로 묻는 게 정말 더 행복해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의 상처는 잊혀질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지젤 펠티에가 말했던 것처럼 아픈 기억은 애써 떠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냥 떠오르기 때문에 아닌 척 할 수 없는 것이죠. 책 속의 도시와 줄리엣도 수용소에서 나와 힘들어하는 레미를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제길! 내가 무지했어요, 줄리엣. 그녀가 여기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 과거를 잊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니.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그렇죠, 줄리엣? 결코 충분치 못해요.”

“... 그래요. 선의만으로는 안 돼요.”

당신이 선의를 갖고 잊음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상처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상처를 잊도록 돕는다는 것 그리고 북클럽.

 그렇다면, ‘피해자만 느낄 수 있는 상처를 잊도록 돕는 다는 것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걸까요. 우리 주변에 피해자가 있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내가 아픈 기억을 머금고 있는 상태라면 어떤 위로가 도움이 될까요.

 우선, ‘과거의 아픔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야한다 라는 개념먼저 파괴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선의를 베풀 때 잊음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피해자에게 잊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위로할 때 흔히 썼던 그냥 잊어버려~’를 배제하니 참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우리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생각났습니다. 매주 내 마음을 자유롭게 말하는 곳. 제가 가장 도움 받고 있는 곳은 바로 감질클럽이었습니다.

 내면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해결책을 주려고 애쓰기보다 내면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 아픔을 공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됩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종류의 아픔이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치유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가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듣는 것. 나의 아픔을 말하는 것. 물론, 이것으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가까이서 보면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늘 위에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이듯, 상처 자체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습니다. , 이야기 거리가 꼭 상처일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어떤 생각을 나누는 것 자체로 우리는 나를 벗어나 하늘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만 느껴본 것타인만 느껴본 것나와 타인 모두 느껴본 것나와 타인 모두 느껴보지 못한 것.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위로받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건지 간자껍질파이 북클럽]도 이런 식의 힐링클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의 아픔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견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전쟁 같은 취업준비를 중백, 마브, 푸린, 희조와 함께 하고 있는 감질클럽을 통해 견디고 있습니다. 새삼 땡큐입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모임.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런 식의 작은 연대야 말로 상처를 받은 나와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의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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