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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푸린] 이방인 해체하기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5. 28.

안녕하세요 푸린입니다. 

사실 이방인에 대해 말하기 앞서 이방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이방인 뒷이야기는 이방인을 샅샅히 제멋대로 해석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영화 이방인 中)



그럼 책을 읽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부분, 그리고 다시 곱씹어보고 싶었던 부분을 질겅질겅 늘어질 때까지 되새김질해보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소설 중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방인의 도입부는 계속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을 처음부터 집중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빨아들였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엄마의 죽음, 그리고 뫼르소의 죽음으로 끝마치는 이 소설에서 과연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뫼르소를 제외한, 뫼르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죽음'이란 신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것, 그러나 애도하고 슬퍼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은 부정적이고 또한 마땅히 슬퍼해야 할 영원한 이별, 그 즈음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 앞에 이상하리 만치(다른 사람들의 눈에서는) 담담합니다.

또한 그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낸 사실까지 더해지며 주위 사람들은 뫼르소를 아주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불효자로 보는 듯 합니다.

물론 살인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말이죠.

그러나 뫼르소에게 죽음이란 아마 새로운 도입 혹은 끝나지 않는 영원성을 내포한 것은 아닐까요?

그만큼 뫼르소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 같진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분에서도 죽음을 오히려 새로이 받아들이고 다른 생명을 얻은 것 같은 새로움을 경험하고요.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소리인 듯 했다.'



 뫼르소의 처음이자 마지막 살인. 그것은 뫼르소를 완전 다른 입구로 이끈 사건이었죠?

그리고 뫼르소는 타는 듯한 더위에 못이긴 듯 네 번의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 '더위', 그리고 그가 저지른 살인은 뫼르소에게 마치 하나의 일과인 것 마냥 아주 당연한 것 처럼 다가왔습니다.

그가 만약 성가신 재판을 겪는 걸 알았다면 아마 이런 행동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뫼르소는 귀찮고 도를 넘어선 에너지 소비는 회피하는 면이 있으니까요.

그는 왜 뜨거운 태양과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를 죽였을까요?

또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정신없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헤맸을까요?

제가 생각했을 땐 '더위'와 '태양'은 그의 결핍과 억제할 수 없는 '분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정해진 일과를 따라가는 뫼르소의 삶 속에 불쑥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더위는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답답함일 수 있겠죠..

그렇기에 무언가에 못이긴 듯 방아쇠를 당긴 건 자유를 갈망하는 뫼르소의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두드린 불행의 문,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있든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해방감을 느꼈던 뫼르소.

그에게 죽음이란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인물이기에 더욱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던 뫼르소.

그의 세계는 어떻게 변동하고 또 어떻게 흔들리고 있을 지 그 전환점은 어디었을 지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방인>도 많이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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