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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종이달] 네 개의 Scenes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5. 14.

안녕하세요 마브입니다^^

이번에는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 종이달을 주제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방송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책톡 멤버들은 책부터 먼저 읽어서 책과 비교하면서 조금 비판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영화 종이달을 먼저 접했고 배우의 불안하면서도 공허한 눈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여럿 있는데 이 장면들은 책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이랑 톡톡이지만 오늘은 제맘대로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 및 책 종이달과 영화 종이달의 비교는 방송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내용에는 이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Scene #1 새벽녘, 지하철 플랫폼

연하 남친 고타와 처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있던 리카는 초승달을 발견한다.

초승달에 손가락을 대고 문질러보는 리카.

리카가 문지르는 대로 초승달이 지워진다.

처음엔 약간 놀라는 표정을 보이지만 결국 살짝 미소를 비치는 리카의 얼굴 클로즈업.

 

 

 이 장면은 제목 종이달과도 연관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달은 어두운 밤에 돋보이게 빛을 내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면서도 해가 뜨면 보이지 않고 시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일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못하기에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사라질까봐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심지어 종이달이니더 불안하지 않나요? 

 리카에게 고타나 횡령한 돈의 존재도 종이달과 비슷한 대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리카는 고타와의 밤을 보내고 남편한테서 충족받지 못한 만족감을 느끼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만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게 과연 내 것인지 아닌지 믿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보통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씻고 다시 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리카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진짜인지, 지금이 실제 상황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달에 손을 대고 문질러 봅니다. 하지만 달은 손이 닿는 대로 지워져 버리지요.

 리카는 순간 흠칫 놀랍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면 어때, 행복한 걸.

진짜같이 보여도 달조차 진짜가 아닌, 모든 게 다 가짜인 세상.

그래도 나는 행복하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나는 이 세상 속에서 자유로우니까...’

리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Scene #2 점심시간, 은행 근처 식당

리카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식당이 만석이라 종업원이 리카에게 다른 손님과 합석이 괜찮겠는지 양해를 구한다.

종업원 뒤에 스미가 서 있고 리카 테이블에 합석한다.

 

스미가 경제 관련 서적을 보고 있다.

 

 

리카: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다니

저도 계약 사원도 됐으니 공부 좀 할까 싶어서 신문 좀 보려고 해도 남편이 신문을 회사에 갖고 가서. 이래서는 발전이 없겠죠?

 

스미: 우메자와 씨 왜 은행을 선택한 거죠? 전업 주부였죠?

일하기로 결심했을 때 은행을 선택한 이유가 뭐죠?

 

리카: 돈 찾으러 갔다가 채용 공고를 봐서요. 다들 일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스미: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경제엔 전혀 관심 없죠?

난 내가 다루는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한 것뿐이에요

 

 

Scene #3 점심시간, 은행 근처 식당

스미는 리카가 200만엔 정도의 고객 돈을 횡령했다고 알고 있다.

 

스미: 갚으면 처음처럼 되는 거야? 그러면 진짜 다 끝난다고 생각해?

 

리카: 송별회, 해야죠

 

스미: 누구?

 

리카: 스미 씨 말이에요

 

스미: 계속 다닐 건데?

 

리카: 그렇죠, 죄송해요. 그만두지 않으시는 거죠. 이동이죠. 본부 서무과였나요?

화라도 내시죠. 거절하면 되잖아요. 정말 갈 거에요?

 

스미: 갈 거야. 가야 할 곳으로. 그 방법 밖에 없잖아.

 

리카는 스미의 말을 듣고 멈칫 하더니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다.

 

리카는 스미와 두 번의 식사를 함께 합니다. 한 번은 횡령을 저지르기 전, 다음 한 번은 스미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나서. 두 번의 식사 장면을 통해 리카와 스미의 관계 변화가 극명히 드러납니다.

 첫 번째 식사 때에는 스미는 25년 경력의 사원으로서 리카를 아무 생각 없이 은행에 나와 일하는 신출내기 아줌마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경제에 관심도 없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은행에서 일하기로 선택한 그저 그런 여자라고. 그에 반해 본인은 경제에 관심이 있고 내가 다루는 돈의 흐름을 알고 싶어 공부하며 일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식사자리에서 스미가 리카에게 돈을 횡령한 행동에 대해 비판하자 리카는 스미의 인사이동 이야기로 화제를 옮긴다. 화를 내든지 거절하지 왜 시키는 대로 하냐는 리카의 물음에 스미는 갈 거야. 가야 할 곳으로. 그 방법 밖에 없잖아.”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스미와 리카에게 각각 다르게 해석될 것 같습니다.

 리카는 본인의 횡령에 대해 책임지고 벌을 달게 받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스미의 말을 듣고 움찔하더니 먼저 자리를 뜹니다.

스미는 25년간 한 은행에 몸담으면서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생길 까봐 마음 편하게 밤 한번 새지 않고 일해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종이나 볼펜 같은 잡품의 수를 체크하는 서무과로 강제이동 배치를 받습니다. 스스로 사직서를 내게 하려는 회사의 술수지요. 지금까지 스미는 본인이 선택한 일인 양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지만 결국 은행은 높은 봉급을 줘야 하는 장기 근무 직원 대신 싸게 쓸 수 있는 비정규직을 선택합니다. 스미에게 마지막 대사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조가 아니었을까요.

자신이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여자로 무시했던 리카는 수만 수천 엔을 맘대로 쓰면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는데 본인은 욕망을 절제하고 주어진 일을 했지만 자기 처지가 리카보다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리카라는 것이 머리로는 분명하지만 뭔가 본인이 더 비참해지는 기분을 스미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Scene #4 오전, 와카바은행 회의실(2)
거액의 고객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리카는 은행 회의실에 앉아있고 은행 동료 스미가 리카를 감시하고 있는 풀샷.

리카와 스미가 대화를 나눈다. (중략)

스미는 리카의 말을 반박한다.

스미: 분명 돈은 가짜일 수도 있죠. 종이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는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당신이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에요.”

 

스미의 말을 듣고 리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의자를 들고 등 뒤의 유리벽을 깨부순다.

큰 굉음을 내며 산산조각나는 유리벽.

깨진 유리벽으로 탈출하기 전, 놀라서 리카의 손을 잡으려는 스미에게 리카는 말한다.

 

리카: 같이 갈래요?

 

혼자 유리벽을 통해 지상으로 뛰어내린 리카는 골목을 질주한다.

 리카는 본인이 선택한 삶이 가짜라는 것을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손으로 달이 지워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듯이. 하지만 방송에서 희조씨가 얘기했듯이 아무리 가짜 삶이라해도 리카가 느낀 쾌락과 감정도 가짜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그것이 가짜 행복인 줄 알지만 애써 모른 척합니다. 대신 피부로 느끼는 쾌락을 내 것이라 믿으며 이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는 진짜 삶인지 가짜 삶인지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래서 리카는 본인의 횡령이 발각된 후에도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받는 대신 현실의 공간을 대변하는 은행 회의실 유리창을 깨고 도주를 선택합니다. 이제는 진짜 삶의 벽을 깨부수고 본인이 만든 세계를 진짜라 믿으며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갑니다. 심지어 스미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까지 하면서.

 영화는 또한 리카의 공간을 두 가지 색으로 보여줍니다. 은행이나 남편과 있는 장면은 시종일관 푸른색이나 회색의 색감을 보이는 반면 고타와의 데이트나 리카의 욕망이 구현된 가짜 삶은 밝은 햇빛이 비치는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리카는 푸른 빛의 은행 회의실에 있다가 유리벽을 깨고 탈출하고 햇살을 만끽하며 달려갑니다. 욕망을 향해 질주합니다.  

 

현실과 욕망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그린 종이달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을 지 궁금하네요.

다음 번에 더 좋은 내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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