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하세요. 고래입니다.
이번 주는 마이클 무어의 <세상에 부딪쳐라 세상이 답 해줄때까지>로 이야기 나눴습니다. 제가 세상에 부딪치고 싶은 몇 가지에 대해 글을 쓰다가 도저히 써지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뭔가 억지로 쓰고 있는 느낌이 떠나질 않아 그냥 안 쓰기로 했습니다. 완성시켰다면 억지스러움이 분명 그대로 전달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맘 같아선 “나 글이 안 써져! 벌금 낼게!” 하며 그대로 잠들고 싶지만 돈도 아깝고, 실은 약간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부터 쓸 글도 부딪침에 일종이긴 합니다. 예전부터 음악을 듣고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했으니 말이죠.
자, 오늘은 5월 17일 선공개 된 언니네 이발관의 6집 수록곡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의 가사에 대한 감상을(아니 홍보 글 정도...) 써보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많이 들어 봤거나,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으면 좋겠지만 일단 제게 그런 건 없습니다. 저는 감정적으로 힘들 때 언니네 이발관의 5집을 자주 들었고, 듣다가 너무 우울 해질 때면 다시 넣어두곤 했습니다.(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는 질리는 게 아니라 지쳐서 그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음. 좋은 의미입니다.) 또 보컬 이석원씨의 책 ‘보통의 존재’를 꽤 오래 전에 읽었으나 생각나는 글은 ‘나이’에 관한 글 하나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겐 나이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나이에 연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생각나는데,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석원씨는 이런 모순적인 내용을 책에 많이 담아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에 대한 저 나름의 느낌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이번 선공개곡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먼저, 노래와 가사를 천천히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_ 언니네 이발관
나의 마음 속에도
강물처럼 오랜 꿈이 흘렀네
아무도 믿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헛된 바람 허 가졌던 죄로
나 이렇게 살아 가게 되었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빈손으로
난 이 미친 세상 속을
겁도 없이 혼자 걸었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으로 앞으로
그게 나 나야
이것 밖엔 할 수 없는 걸
그게 나 나야 나야
나의 마음 속에도
지울 수 없는 사람 있었지
예예예 소나기처럼 왔다 가버린
바래선 안될 것을 바랬던 죄로
나 이렇게 살아 가게 되었지
어디에도 '널 위한 세상은 없어.'
난 항상 이 세상을 알고 싶어
애를 써 왔네
내게 바라는 게 무언지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게 나 나야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
그게 나 나야 나야
난 싫어 이런 내 모습이
난 싫어 이런 내 세상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밖엔 살 수 없는 걸
이게 나 나야 나야
아주 먼 길이었지
나쁜 꿈을 꾼 것 같아
꿈속에서 만났던 너처럼
3.
저는 이 노래가 세상의 존재와, 그곳에 놓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헛된 바람 허 가졌던 죄로 / 나 이렇게 살아 가게 되었지
바래선 안될 것을 바랬던 죄로 / 나 이렇게 살아 가게 되었지
가사 속의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죠. 거북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게 되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 놓여진 것이지요. 시작부터 우리는 세상에 종속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세상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진 자들은 희망을 품은 죄로 이 과정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을 자신에게 맞춰보려 하는 것이죠. 이 생각은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을 위한, 오직 당신만을 위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이 세상에 맞춰야만 하는 곳을 살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널 위한 세상은 없어.'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한 개인은 소속된 개체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에게 딱 맞는, 한 개인을 위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난 항상 이 세상을 알고 싶어 / 애를 써 왔네 / 내게 바라는 게 무언지 / 알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맞춰진 세상이 아니기에 한 개인은 당연히 세상을 알기위해 발버둥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살아가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애 씀'은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난 싫어 이런 내 모습이 / 난 싫어 이런 내 세상이 / 하지만 나는 / 이렇게 밖엔 살 수 없는 걸 / 이게 나 나야 나야
하지만, 슬프게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 세상 속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마지막으로 제목입니다. 이 제목이 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은 고정된 판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 짜증나고 싫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살아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흔들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죠.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살아볼거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봅니다.
4.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가만보니 마이클 무어의 세상에 부딪쳐라랑 비슷한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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