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네요!
71화 방송 잘 들으셨나요? 오늘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 <정말, 정말 좋았지>와 같이 제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는 짧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정말, 정말 좋았지>
1.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붙어있는 기숙학교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않았다. 우리의 뽀얀 피부와 그 위에 발기한 불그스름한 여드름은 누구나 아름답다 할 만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누구나 징그럽다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 풋내 충만한 치기들에게 부모님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숙 생활은 과연 천국이었다. 학기가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첫 프러포즈가 이루어지고, 이 사건은 곧장 다른 남학생들에게도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몇 커플이 탄생하고, 누구는 이런 ‘헤픈’ 경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러움 섞인 조소를 날릴 때, 우리의 담임은 비밀리에 접수한 정보를 들고 자습실에서 몇 아이들을 불러내었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기에, 그 말인즉슨 나는 연애 당사자 중 한 명이 아니었기에 불려 나가진 않았지만, 담임과 면담을 ‘당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담임이 커플이 된 아이들을 불러 우리 학교에서 연애는 금지라는 규칙을 다시금 주입시키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엎드려뻗쳐 종아리를 맞는 훈육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헤어지겠다는 약속 아닌 명령을 내리고 짧은 면담을 끝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명령이 너무 단순하고 무모해서 충격을 받았다. 연애를 금지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일 줄이야. 당시에는 연애를 금지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큰 반항감 없이, 그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를 마음대로 하려는, 그리고 해버리고야 마는 그 호쾌함이 놀라웠었다. 그런데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불려 간 두 커플 중 한 커플은 사귀기로 한 지 3일이 되지 않은, 아직 통성명 이상의 그 무엇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두고두고 놀리는 부분인데, 이들은 담임의 그런 훈계가 아니었어도 2주 이상 사귀지 않았을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누가 담임한테 우리들의 연애사를 고발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 덕분에 우리는 평생 이 둘이 어색해진 것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연애 금지는 명목상의 규정으로 바뀌어갔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이제 자기들끼리 막장드라마를 찍어가며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시험했다. 나는 이때 연애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사람들의 연애 경험에는 엄청난 큰 빈부격차가 있다는 것, 즉 하는 놈은 계속 하고 안(못) 하는 놈은 계속 안(못) 한다는 것, 또, 사람은 사람을 얼마나 쉽게 버릴 수 있고 또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과 연애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애써 본보기가 되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물론 머리로 아는 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2.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더 이상 이 곳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곧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에 권태를 부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더 이상 기숙학교가 자유의 공간이 아닌 감옥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만 허락되는 귀가(그마저도 지방 학생들은 집에 가지 못했다), 저녁 열한 시 반까지 이어지던 자습, 그로 인한 부족한 잠. 그 외에도 부족한 개인 공간, 부족한 수건, 부족한 단백질.. 그리고 우리를 더 힘들게 했던 서로의 부족한 양심과 부족한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감옥을 나가는 길은 오직 졸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뿐이라는 인식이 우리를 잠식했다. 나는 이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 자체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방이라는 아이들의 생각에서 벌어지는 많은 추태들은 그 당시에도 역겨웠다. 자신들이 모든 오차범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양 모의고사 전략을 짜며 되려 자습 분위기를 방해하는 무리들이며, 평균 수학 점수의 차를 들먹이며 여학생들을 하수 취급하던 일부 남학생의 꼴 같지 않은 연대(ally)며, 동영상 화면 속 인터넷 강사를 인생의 스승 운운하면서 눈 앞에 있는 교사나 기숙사 사감에게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던 무리들이며, 다 역겨웠다. 이렇게 아이들의 감수성을 ‘단일, 단순 이꼬르(=) 추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들을 좁은 공간에 24시간 몰아넣고 똑같은 것을 먹게 하고 똑같은 것을 입게 하고 24시간 공부만 하게 하는 것의 폐해라면 폐해였을까? 아직도 확실히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99명의 좋은 사람들이 1, 2명의 나쁜 사람에게 쉽게 자신을 내주듯이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 누구랄 것 없이 점점 더 영악해졌던 것 같다.
물론 전적으로 우리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교사와 학교도 공범이었다.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었다. 한 학년 선배 중 하나가 교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학교 생활 중 문제를 일으켜 학생기록부에 안 좋은 기록이 찍히자 비관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선배가 장으로 있던 동아리의 부원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장례식 절차가 끝나자 조례시간에도, 학생 조회시간에도 그 사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담임도,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도 어떤 언급도 없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여느 날과 똑같았다. 일본인 교사 한 명만 오늘은 자기가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다고 조용히 자습할 것을 요구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 며칠 후 유리창엔 철창이 덧대어졌고, 우리는 그 사건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했다.
3.
학교가 주야장천 외치던 <글로벌리더>가 무색하게, 대학 가면 모든 게 해방이라던 아이들은 거진 다 n수를 해서 명문대에 입학했고 지금은 거진 다 고시생이 되었다. 개인을 비판하든, 구조를 비판하든, 비판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도 정해진 열차에서 탈선할 용기는 없는, 누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기에 더욱 비겁한 짓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같이 부대껴 살았나 생각해보면 슬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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