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61화 방송 잘 들으셨나요?
예전에 수업 과제로 '자아'를 주제로 글을 적은 적이 있어 올려봅니다, 저도 데미안에게 진 빚이 있었네요.
고백
하지만 미안해 이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었어 그 사람을
-델리스파이스, ‘고백’ 중에서
나는 고등학교 때, 아주 원만한 대인관계를 지닌 아이였다. 3년 동안의 기숙사 생활은 관계맺음에서 시작해 관계맺음으로 끝이 났다. 어떤 아이는 극단적으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 아이들은 극히 소수였다. 하루 세 끼를 혼자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가 두려운 욕망들이 모여 아이들은 무리를 지었고 그 무리 안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무리 안에서는, 관계에 대한 갈망에서부터 집착, 증오, 회의, 체념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폭발했었다.
아이들은 각자마다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구하려 애썼고 거기서 내가 택한 방법은 ‘남에게 밉보이지 않기’ 였다. 원래부터 나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보단 친구들에게 맞춰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아이였다. 친구들이 뭘 하자고 할 때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 ‘No’라고 한 적이 별로 없었다. 흔히 ‘좋은사람 컴플렉스’라고 하던가. 상대방이 내게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의 욕망에 내 욕망을 타협하는 것이 익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마음이 맞지 않았던 친구와 마지못해 어울리며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친구를 떠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지 못했다. 그 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항상 참고 참았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가 되어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나는 돌연히 그녀 곁을 떠나버렸다. 그녀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워 했고 꽤나 힘들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동안 괴로웠던 것을 생각하며 외면하고 말았다. 그렇게 관계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나의 성격은 후에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아이들과의 관계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남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망과 내 진짜 욕망, 즉 내 본심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두 욕망 사이에서 나는 항상 전자를 택했다. 그로 인해 나는 친구들로부터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곤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 들리는 가식적이라는 말과 그렇게 행동하는 데서 오는 피곤함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내 욕망대로 사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왜 그것이 그토록 용기가 안 났을까?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다투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마 오빠도 본 적이 없고 누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을 받는 것에도, 주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니고 묵묵히 직장생활을 하셨다. 그리하여 지금은 사회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친가에서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중년이 되셨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 경제를 살리느라 아버지는 본인은 물론, 친구, 배우자에게까지 소홀하다면 소홀하신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와 처음 결혼했을 당시, 어머니는 날마다 우셨다고 한다. 말이 없으신 아버지와 경제적 도움을 원하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머니의 욕망은 아무런 기댈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한 없이 이해하고 맞춰 사는 길을 택하셨다. 물론, 어머니도 택하신 것만은 아니셨을 것이다. 어머니도 그렇게 길러졌을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의대에 진학해 유학을 가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서 합격이 보장되었던 약대에 진학하셨고 그것에 대해서 어머니는 유일하게 미련이 남으시는 듯 보였다. 아마 그 외에도 어머니의 욕망은 스스로 버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많이 밀어주시는 편이시다. 하지만 타인에 대해서,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만큼은 한 없이 수동적인 자세와 동경과 연민을 강조하신다.
(중략)
차차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다른 가족들을 충분히 도울 수 있게 된 뒤, 아버지는 조금씩 여유를 갖기 시작하셨고 어머니에게도 꽤나 다정해지셨다. 어머니 또한 이제는 남편과 공존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는 법을 익히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한 가정을 지켜낸 한 아내의 순종과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심을 느낀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그런 감사함이 나에게 관계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가정이 깨지는 것이 두렵듯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나중에 있을 평화를 위해 나의 욕망을 유예시키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오니 관계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내가 모든 사람을 감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을 내 시야 안에 넣을 수 없다. 그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자, 나는 점점 소수의 진정한 관계를 갈구하게 되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대학교에서 만난 선배이자 친구의 ‘넌 자아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은 내가 이제까지 애써 피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직시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관계가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변해갔다. 나의 욕망이 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에게 계속 묻는다. 그리고 그것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관계는 탄력이 생기고 좋아지며 나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아직 훈련이 되지 않아 여전히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모습이 신경 쓰이고,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용기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욕망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더 이상 나를 속이지는 않게 됐다. 이젠 고백할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 좋은 사람이었으나 불행했다고. 이젠 좋은 사람보단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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