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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뼈 속 깊이 각인 된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2. 5.


오늘은 불합리한 권력관계로 인해 새겨진 상처에 대한 생각을 짧게 이야기 해보려한다.

나에겐 두 살 터울 누나가 두 명 있다. 내가 21살 즈음, 작은 누나가 중학교 동창회를 다녀와서 내게 물어보았다.

고래야, 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서열 같은 거 아직도 있냐.”

? 뭔 일 있었어?”

오늘 동창회에서 중학교 때 싸움 좀 했던 남자애가 여전히 다른 남자 애들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더라. 그것도 엄청 유치하게. 근데 이상한 건 예전에 걔 눈치 보던 애들도 여전히 별 말 못하더라.”

 그땐 아마 뭐 나이 먹어도 그런 거 좋아하는 놈들은 다 똑같지정도로 유치한 짓을 한 녀석을 탓하며, 별 일 아닌 듯이 대화를 마쳤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황은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권력관계는 누구나 경험해본 것이다. 그 서열을 정하는 방법은 동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 집안의 부, 성적, 물리적 힘 등에서 나온다. 내가 겪은 학창시절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바로 물리적 힘이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의 가장 큰 무기도 큰 덩치와 싸움실력 즉, 물리적인 힘이었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 보건데, 남자들 사이에서 물리적 힘에 의한 서열은 성인이 되어서도 알게 모르게계속 작용한다. 사실, ‘알게 모르게란 단어가 무색하리만큼 그 힘은 대놓고작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때, 물리적 힘으로 권력을 누렸던 자들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무기를 범죄가 되지 않게, 그리고 사회의 교양에 맞춰 사용 방법을 바꾸게 된다. 예를 들어, 동창회의 술자리가 무르익다보면 누군가의 입에서 , 너 많이 컸다.”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이는 농담 같지만, 한편으로 학창시절의 권력자가 피권력자에게 더 이상 기어오르지 마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표현은 알게 모르게일지 몰라도 한때의 피권력자에게 그 메시지는 대놓고전달되는 것이다. 특히, 아직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지 않은 20대 초중반의 동창회는 중, 고등학교 때의 권력 색이 더욱 짙게 배어있다. 분명한 건, 어떤 권력 관계든지 거기서 분출되는 감정과 기억은 권력의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뼈 속 깊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물론, 질긴 인연이 아닌 이상 살다보면 한 때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자연스레 흩어지기 마련이다. 이 둘 사이에 형성됐던 권력은 자연스레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직접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뼈 속 깊이 각인 되어 있는 감정들이 고개를 들면서 시작된다.

 피해자의 뼈 속 깊이 각인된 것은 자신을 지배했던 자에 대한 원망,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이 대부분이겠지만 작게나마 가해자가 가진 권력에 대한 부러움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주인공 정종석은 학급의 힘센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종석의 시선에서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들은 악행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자신보다 부유한 가정 속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물어뜯고 싶은 것을 실컷 물어뜯는 같은 녀석들이자, 학교와 가정의 편안한 보살핌을 받는 개자식들 이기도 하다. 그는 그들이 혐오스럽지만 한편으로 그들처럼 세상을 맘껏 물어뜯어 보고 싶고, 가난을 피해 보살핌을 받고 싶은 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한다.

 나는 이 혐오와 부러움 섞인 복잡한 감정이 괴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감정에 취해, 자신이 어떤 권력을 얻었을 때, 과거에 피해 받은 것과 똑같은 해를 가하게 될 때. 피해 받은 만큼 가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괴물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하위 권력이자 동시에 상위 권력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당신이 가족에서 차지하는 위치부터 시작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직장까지 크건 작건 우리가 놓여있는 사회적 모든 위치엔 권력 혹은 피권력이 부여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물론, 어떤 피해는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기에, 괴물이 되어서라도 가해하고 싶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무책임하게도 나는 이렇게 거대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여겼던 것과 비슷한 권력에 도달 했을 때,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용기이자, 진정한 보복이 아닐까. 자신이 당한 것에 마냥 굴복하자는 말이 아니다. 부당한 피해에 있어서는 큰 목소리로 외쳐야한다. 허나, 적어도 그들과 똑같아져선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상처받은 나는 세상에 또 다른 상처받은 나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그들과 똑같아 지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뼈에 새겨지는 가장 큰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해자의 뼈 속 깊이 새겨진 각인은 무엇일까. 이는 피해자의 상처엔 댈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스스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가해자는 권력을 불합리하게 사용하는 것의 편리함을 맛 본 자이다. 이 편리함은 권력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한다. 자신이 끊임없이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자에게 이것은 괜찮은 삶일지 모른다. 허나 누가 그럴 수 있는가. 권력의 편리함을 맛 본 자는 더 올라가기 위해서라도 그에 상응하는 굴복을 하며 살아야한다. 결국 이는 자발적 피해자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둘째로 죄책감이다. 이 죄책감은 처음엔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당했을 때, 이 죄책감은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온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봐도, 피해를 입었을 때 과거의 가해는 말 그대로 불현 듯 떠오른.

 가해자들의 각인들도 피해자의 것처럼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권력 남용의 말로는 피폐한 삶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그만 멈춰야 하는 것이며, 과거의 죄책감을 받아들이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결국 우리 모두는 특정 위치에서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뼈 속 깊이 각인 된 것의 욱신거림을 자기 선에서 참아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써놓고 보니, 책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을 안했네요. 허허허.

이해해주세용.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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