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년백수입니다. 책이랑 톡톡 56화는 정희진 씨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방송 중에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방송을 들으신 후 ‘짜라투스트라2’님께서 팟빵에 너무나도 감사한 댓글을 달아주셨기에 이 자리를 빌어 ‘짜라투스트라2’님의 댓글에 대한 댓글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긴 글이라 팟빵에 달아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팟빵에 남겨주신 ‘짜라투스트라2’님의 댓글은 이렇습니다.
'페미니즘의 도전'편 아주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음, 듣다보니 뭔가 해야할말이 있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중백님의 의견에 공감한다는 말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단지 생물학적인 '섹스'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당연히 이 사건이 생물학적인 '섹스'의 문제라고 여깁니다. 동시에 저는 이 사건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젠더'의 문제로도 보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생물학적인 문제와 정치사회적인 문제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영역의 문제라는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딱 잘라서 이게 생물학적인 문제라고만 하거나 오로지 정치사회적인 문제라고 '단언'하는 건 이 사건의 어떤 특정한 측면만을 부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덧붙여서 이 사건을 보는 것에 있어서 하나의 정답만을 가질 게 아니라 여러개의 답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두번째로 여성이 외모와 살빼기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에 대한 부분인데, 사실 이건 이미 기존의 페미니즘과 성정치학,문화 연구에서는 사회적인 압력이 아주 크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고전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하는 것처럼 여성은 외모에 신경 쓰고, 살을 빼야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남성보다 더 강하게 받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말이죠.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너무나 사회적 압력이 강하기에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만 이겨내기에 쉽지 않은 문제라는 말입니다. 물론 한 개인이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겨낼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외모에 대한 생각을 주입받는 여성들이 그걸 쉽게 할 수 있을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이상, 방송을 듣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서 한 번 적어봤으니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고요(ㅎㅎㅎ),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방송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정성스럽게 남겨주셔서 여기서 잠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가겠습니다 ㅠㅠ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쓰신 1번 의견에 대해 저도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점심을 먹는다는 아주 사소한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건은 중년백수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하나지만 그 이유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김치찌개를 판매하는 식당이 가까워서였을 수도 있으며, 한국에서는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단 하나의 이유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식습관, 지리적 요건, 음식문화 등등이 모두 조금씩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일수도 있습니다. 그냥 국물이 좀 먹고 싶었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 김치찌개 가게가 있었거나, 아니면 웬만한 가게라면 김치찌개쯤은 보통 다 판매하는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김치찌개를 먹게끔 유도되었다든지 말이죠. 한 개인의 일이 이러할 지언데 사회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이 얽히고설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또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오롯이 생물학적 차이에서 발생한 사건일 뿐이고 여성 혐오적 요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절대 찾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사건은 개인적 여성혐오(혹은 사회적 여성혐오의 가능성), 정신질환 환자를 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태도, 그리고 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또 다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 사건과 관련해서 여성혐오와 관련된 담론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오직 ‘여성혐오’의 문제만으로 볼 수 있는가? 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내려지고 있는 어떤 정의를 부정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인식하기로는 그것을 오직 ‘여성혐오’의 문제만으로 보고 싶어 하는 시각이 많았으니까요. 생물학적 차이는 그것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타겟이 된 것에 대한 이유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면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갈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으로 사용한 것 이구요. 물론 제가 생물학적 차이를 다소 강조했던 것은 맞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녹음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떠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남성이 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 했고 그 대상이 생물학적 약자인 여성이었던 사건으로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 중에 희조씨께서 지적해 주셨듯이 이 사건은 평소 여성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한 남성이 의도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중에 그렇다면 여성혐오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사석에서 “야 강남역 살인사건 그거 여혐사건으로 볼 수도 있는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그래 어느 정도 그렇게 볼 수는 있는 것 같아”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당시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칭하는 맥락은 그것보다 훨씬 밀도가 높았습니다. 약간 과정해서 그 사건을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주장을 반박하고자 생물학적 차이를 운운한 것이었지 이 사건이 오직 생물학적 차이 하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유아를 살인했습니다. 아이가 밤마다 우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짜증났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하게 ‘유아 혐오’ 사건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요? 그 어머니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미혼모로서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어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싶었으나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못해서 억지로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이것은 유아혐오사건 이다. 라고 말해도 괜찮은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랬을 수도 있습니다. 벌어진 사건은 하나지만 그 사건이 지니고 있는 성격이 다양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 빗대어 그 사건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누군가에게는 ‘여성 혐오 사건’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묻지 마 살인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본다 치더라도 저는 그것의 핵심적인 요인이 ‘여성혐오’는 아니다. 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이었지 그 사건에서 여성 혐오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에게 강남역 살인사건을 지칭하게 한다면 저는 차라리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 마 살인사건’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보다 ‘묻지 마 살인’이 더 핵심적인 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범인은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분명 범인의 강력한 범죄동기가 ‘여성혐오’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여성을 혐오하게 된 원인은 대부분 본인이 겪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다가 무시를 받았다거나 아니면 혼자만의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여성 혐오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에서 더 핵심적인 것은 ‘여성 혐오’라는 범죄의 동기보다 ‘묻지 마 살인’이라는 범죄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한 개인이 개인적인 경험으로 특정 대상을 혐오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게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일어날 법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있지도 않았던 사건을 혼자 꾸며내고 실제로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저는 더 충격적입니다. 누군가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어떤 대상을 이토록 죽이고 싶을 만큼 혐오했다는 것보다도 어느 날 갑자기 길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칼에 찔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 충격적입니다.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에서 총기난사로 인해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 조승희는 8살 때 미국으로 넘어간 사람으로 지속적인 학교 폭력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건의 맥락 또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우리는 보통 이 사건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라고 부르지 ‘학교폭력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한 개인이 총기를 사용해서 이렇게 무차별적인 살인 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굳이 묻는다면 저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보다는 ‘묻지 마 살인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묻지 마’라는 것은 그 대상이 ‘묻지 마’일 뿐이지 대부분 발생하는 원인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사건에 있어서는 여성혐오 보다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문제나 묻지 마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사회적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하는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여성혐오가 이야기할 거리가 안 된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문제만 남았습니다. 살인범의 여성혐오가 개인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가정입니다. 만약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이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가 한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을 혐오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만들고 있다면 이것은 묻지 마 살인보다 더 충격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런 ‘사회적’요인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이 지점에 대해서 저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부정은 못하지만 개인적 능력 부족으로 이 사건에서 그런 근거들을 찾을 수 없기에 사회적 요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범인이 평소 여성을 혐오하게끔 사회적 교육을 받았다기보다는 여성에게 멸시를 당한 경험 혹은 망상으로 인해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여성혐오에 대한 담론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당시 여성혐오를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있어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희조씨께서 팟빵에 남겨주신 링크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링크)
글쓴이가 말하는 대로 범인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정말 개인적 사건의 연속으로 여성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남녀를 가리지 않고 범인을 평소에 무시했는데 여성만 혐오하게 된 것이라면 사회적 맥락이 작용했다는 점이 틀림없겠죠. 하지만 매번 여성에게만 무시를 당했다면 어떠한 사회적 맥락 없이도 여성혐오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마 경찰이 조사한 부분은 이 지점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것은 여성혐오 사건이라기보다는 묻지 마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경찰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경찰이 신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위 글의 저자처럼 하나의 가정을 어느새 명백한 사실인 것 마냥 둔갑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사건을 ‘여혐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여기서 ‘여혐사건’은 일반적으로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여성이 혐오 받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뜻한다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 개인적으로 여성을 혐오해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분명 이 사회에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라는 의미가 읽혀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고 있는가? 가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이미 수긍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아한 것은 이 사건의 원인이 그것이냐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이것을 그렇게까지 ‘여혐사건’으로 명명하고 싶어 하는가 하면 그것은 여성운동에 그런 사건이 필요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 혹은 혐오는 대부분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생활 곳곳에 숨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를 입고도 그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때로는 여성이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여성운동의 적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용의주도하고 면밀한 적입니다. 반면에 강남역 살인사건은 흉악범죄라는 것이 명백한 사건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도 명백합니다. 이런 사건을 가지고 피해를 주장하면 굉장히 효과적이고 간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 운동 입장에서는 이런 사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성운동에 있어 그런 열망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방송에서 고래씨가 말했고, 희조씨가 블로그에 남겨주신 것처럼 ‘피해자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일수도 있겠습니다. (링크)
이쯤 되면 저 자신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그냥 여혐사건이라고 부르면 안 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붙잡고 글을 쓰고 있어? 하는 의문이 듭니다. 사실 저는 이 사건이 뭐라고 불리든지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누가 여혐사건이라고 하면 그냥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회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구성원들은 그것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공동체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엉뚱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면 정작 필요한 것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게 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페미니즘에 있어서 크게 발전적인 담론을 남기지 못하고, 묻지 마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성도 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여혐이나 아니냐만 가지고 싸우다가 소모된 것 처럼 말이죠. 2017년 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소관위에 회부되었습니다. 이 법안의 골자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무고죄로 고소되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성폭력 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종료되거나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고죄를 조사‧수사‧심리‧재판을 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겠습니다. 한 여성이 경찰서에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소하기 위해서 사건의 정황을 형사에게 자세하게 전달해야합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온 경찰서 분위기에 주눅이 들고 가뜩이나 여성으로서 표현하기 민감한 부분인데 남성 형사는 딱딱한 태도로 그녀를 대합니다. 분명 피해자로서 경찰서에 찾아왔는데 괜시리 더 불안해지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그녀를 무고죄로 고소합니다. 누군가를 고소해본 것도 처음인데 고소를 당하기까지 하니 더 당황스럽고 불안해집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폭력 사건의 신고 비중이 낮다고 합니다. 분명 그녀에게 도움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먼저 성폭력 담당 부서가 따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존재하겠지만 더 증설할 필요가 있겠죠. 그리고 그 부서의 근무자들은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아무래도 동성인 여성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해당 부서의 업무는 단순히 고소에 대한 행정적 업무만이 아니라 법적 조력 및 고소 여성으로 하여금 고소의 정당성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런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불안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적극적 행위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여성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주인임을 자각하도록 돕는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합니다. 성폭력과 관련된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수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도 교정되어야 합니다. 일상적 성폭행을 일삼는 남성들의 시각도 교정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반성도 뒤따라야겠지요. 또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량을 대폭 늘리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 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많은 노력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엉뚱하게 ‘무고’를 금지시킴으로써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무고’를 금지시킴으로써 그런 문제가 해결되고 그로 인한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하겠습니다. 아니 금지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를 훨씬 웃돈다면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한 것은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링크)
이처럼 사태의 원인파악이 잘못되면 엉뚱한 대책을 마련하고 그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여성은 화장실에서 용무를 볼 경우 남성보다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공화장실을 보면 여성화장실의 줄이 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여성만 불편하니 남자들도 다 강제로 앉아서 소변을 보게 하자고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겠죠. 여성화장실을 남성화장실보다 크게 짓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 글을 적으면서 저부터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하는 노력이 모자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말이죠.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어떻게 그게 여자혐오 사건이냐 그것보다는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벌어진 묻지 마 살인사건이지” 하는 거랑 “그래 여자들 입장에서는 여자혐오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경우에는 그것보다 묻지 마 살인의 요소가 더 컸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네.”라고 말하는 것은 같은 말이지만 천지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앞으로도 더 면밀하게 바라보고 더 옳은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래는 짜라투스트라2님의 2번 글에 대한 이야기도 더 깊게 다루고 싶었는데 1번 만으로도 제게는 너무 버겁네요 ㅠㅠ 기회가 된다면 2번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방송 들어주시고 이렇게 견해까지 남겨주신 짜라투스트라2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욱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더 좋은 방송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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