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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요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2. 11.

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59화 방송 잘 들으셨나요?
2부 토론 000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요가를 주제로 써봤습니다 :D

요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언가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게 피아노를 처음 가르쳐 준 선생님은 내게 한 그루의 피아노와 같다. 나는 피아노를 생각할 때마다 그녀를 함께 떠올린다. 내게 고스톱을 처음 가르쳐 준 친척들도 비슷하다. 나는 고스톱을 생각할 때마다 친척들의 참견과 변죽이 오가는 북적북적한 명절 풍경을 떠올린다. 나는 여러 종류의 운동을 배워봤다. 수영, 테니스, 검도 등 초등학교 때 배웠던 것을 비롯해 탁구, 호신술, 피트니스, 골프, 배구, 라크로스, 암벽 클라이밍, 서핑 등 실로 여러 종목에 도전했다. 특히, 미국에서 지냈던 1년 동안 기회가 많아 집중적으로 여러 운동을 탐했다. 운동을 여러 번 배우다 보면 종목별로 강사의 특성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종목의 특성과 강사가 놀라울만치 닮아있기 때문이다. 무술가이면서 호신술을 가르치던 강사는 마주 보고 있으면 내 눈이 뚫어질 듯한 건장한 눈빛을 쏘아내면서도 절대 남을 먼저 공격할 것 같지 않은 절제가 얼굴에 배어있었다. 줌바를 잘 추는 부트캠프(피트니스의 일종) 강사는 이란 출신 여자였는데, 연한 갈색 피부의 통통하면서 탄력 있는 몸매와 동그랗고 호기심 많아 보이는 눈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탱글탱글하게 올라간 엉덩이는 항상 업텐션이었다. 암벽 등반장에는 마르고 날렵한 몸을 가진 다람쥐족들이 날아다녔다. 청개구리마냥 겁 없고 개구쟁이 같은 그들의 눈빛에 옆에 있으면 왠지 기가 죽곤 했다. 그런가 하면 서핑 클래스에서 만난 백인 남자 강사는 아무리 수강생들이 도움의 눈빛을 보내도 나몰라라 하고 오히려 자기 혼자 유유히 파도를 타곤 했다. 그런데도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멋있어 보여서 면죄부를 줬다고 할까, 별로 밉지 않았다. 이렇듯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가 가르치는 대상을 닮아있고 나는 그 대상보다 가르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요가를 떠올리면 ‘느림원’을 떠올린다. 느림원은 내가 다니는 요가원 이름이다. 요가를 배운 것이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중학교 토요일 특별활동 시간에 처음 요가를 접했고 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 수능 후 무료했던 겨울에도 요가를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요가는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고 다이어트를 위한 하나의 수단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작년 초 아주 새로운 요가를, 정확히 말하면 느림원을 만났다. 느림원은 신촌 한복판에 있는 요가원이다. 아래층에는 무려 고르곤졸라 피자와 보쌈을 같이 파는 부대찌개 가게가 있고, 최근 옆 건물에 최신 기계를 겸비한 코인 노래방이 들어선, 그런 유흥가 한복판에 조용히 위치하고 있다. 아마 의식하고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이다. 처음 느림원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곳이 하나의 동굴 같이 느껴졌다. 그 작은 내부에서 나무가 자라고 연못이 펼쳐져있을 것이라 누가 상상하겠는가.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동굴 아래 순백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쉬거나 책을 보며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다른 요가원도 보통 정갈하고 편안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강사들도 대부분 평온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느림원은 뭔가 좀 달랐다.
   느림원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일단 요가복에 눈이 가지 않도록 모두 무채색의 펑퍼짐한 옷을 입어야 한다. 너무 타이트하거나 화려한 무늬가 박힌 트레이닝복은 입을 수 없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요가원은 형광색 끈나시에 큼지막한 대문자 알파벳이 프린트된 레깅스를 누군가는 분명 입고 있었는데, 느림원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당연히 있어야 할 거울이 없다전신 거울에 둘러싸인 스튜디오가 너무 익숙한 나에게 거울이 없는 건 꽤 충격이었다. 심지어 조명마저 어둡다. 그럼 어떻게 자세를 확인하라는 건가. 틀린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지 않는가. 대신 느림원에서는 마음으로 자세를 맞춘다. 마음속으로 일직선을 그리고 곡선을 그리고 골반을 내밀고 허리를 바로 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더욱 정신을 모은다. 처음에는 이런 원칙들이 낯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그 깊은 뜻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선생님들도 이런 것에 대해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는다. 계속 의문과 의구심만 가진 채로 남겨둔다. 나도 그렇게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근 동작이 어느 정도 몸에 익어 눈을 감고 수업을 듣는다. 눈을 감고 강사의 말에만 집중하면서 동작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깨달은 것이 있다.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편안하다. 다른 수강생들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편안히 나의 자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끝내고 무엇을 먹을까, 다음 학기 수업은 뭘 들을까, 어제 했던 농담이 정말 웃겼었지, 등 유체이탈의 끝을 달리는 나를 발견한다. 꿈을 꾸는 듯 몸과 마음이 분리된 느낌. 계속 동작을 틀림없이 따라 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 눈을 감고 동작에 집중하기 위해선 오히려 더 많은 정신력을 쏟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다리를 찢고 원을 그리고 고꾸라서고 하는 일반 동작들은 어렵고 자칫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근육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반가부좌로 앉아 있는 자세는 근육에 전혀 자극이 안 가기 때문에 너무 편안해서 딴생각을 하게 되기 십상이고 그러다 보면 자세가 쉽게 흐트러진다.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거북목처럼 머리가 앞으로 쏠려 있고 어깨는 굽어 있다. 그래서 편안한 상태에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된다. 티비를 보면서 꼿꼿이 앉아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가장 편안할 때, 아무런 시련도 고민도 없는 때, 우린 방심하기 마련이다. 가난할 때, 시간이 촉박할 때, 고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가장 열심히 산다. 오직 살아내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고난을 힘겹게 넘기고 가서 편안한 상태가 오면 그 기억을 잊고 또 아무렇게나 살아간다. 어떤가, 본인이 좀 철학적인가?
   또한, 느림원은 말 그대로 느리다. 다른 요가원에 비해 1.5~2배 정도 동작을 하는 속도가 느리다. 흔히 요가를 강도가 세지 않은 운동이자 스트레칭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이완만 하는 건 아니고 수축과 이완을 번갈아 하기 때문에 근육에도 많은 자극이 있다. 더군다나 속도가 느려지면 그만큼 자세를 유지하는 힘, 즉 근육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느림원 요가 수업은 실제로 힘이 많이 든다. 하지만, 이 느린 속도 때문에 지겨움을 느낄 수는 있다. 나른하거나 잠이 올 수도 있다. 그것은 집중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그저 요가라는 운동이 자기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가 요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운동이 있다.
   다행히 요가는 나에게 잘 맞는다. 심지어 나는 요가를 통해 성적인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요가를 하는 한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씩이나 황홀해지는 경험을 하는데 최근 이러한 경험을 ‘요(르)가즘’이라 이름 붙이기로 했다. 어떨 때 요르가즘을 느끼느냐고? 어려운 동작을 끝내고 마지막에 손끝을 하늘로 쭉 뻗은 다음에 뒤로 밑으로 천천히 내릴 때 어깨와 팔뚝이 만나는 근육이 한껏 수축됐다가 천천히 이완되면서 찌릿찌릿한 느낌을 줄 때, 그때가 바로 그때이다. 다리를 꿇고 앉아 등 뒤에서 양손 깍지를 껴 바짝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던져 이마를 바닥에 댄 다음 이마와 정수리를 번갈아 앞뒤로 롤링하며 두개골을 자극할 때, 그때가 바로 그때이다. 기어가는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다리는 어깨 넓이로 벌리고 그대로 손을 앞으로 스르르 굴려 겨드랑이와 턱을 바닥에 걸고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듯 어깨 뒤쪽과 겨드랑이를 꾹꾹 눌러줄 때, 그때가 바로 황홀경의 순간이다.

Marjariasana(고양이자세) 변형 출처: chadyoga.wordpress.com           

요르가즘을 완성해주는 게 있는데 그건 강사들의 조곤조곤한 지도 한마디 한마디다. 그것은 과연 황홀경으로 가는 천연 윤활제라 할 수 있다. 좋은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은 요가 강사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데, 그들의 편안하면서 일정한 목소리는 원활한 동작을 위한 필수 요소이며 특히 이완하는 동작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어깨에 힘을 풀고, 입술과 미간에도 힘을 풀라고 그렇게 나지막이 말씀하시면 나는 막 미간을 다림질한 것처럼 아니 갑자기 방심해서 힘주었던 방광이 풀려버린 것처럼 미간 사이가 막 영광스러워진다. 그들의 말한마디 한마디에 내 모세혈관에 있는 수많은 작은 세포들까지 온기가 가 닿으며 그럼 나는 버터가 프라이팬 열기에 자르르 녹는 것 마냥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매일 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힘겹게 절정을 넘겼다면 후아- 하고 입으로 길게 숨을 내쉬면 그게 또 아주 좋다. 스스스쓰으ㅡ하고 치아 사이로 가늘고 길게 내뱉는 것도 깔끔한 마무리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요가를 직접 지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을 갖고있다. 이런 말을하면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일단 ‘너 요가 잘해?’, ‘다리 찢을 수 있어?’라는 질문을 하고, ‘갑자기 꿈이 엉뚱한 데로 갔네’라고 말하는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 앞에서 많은 걸 설명할 수는 없고 설명하기도 귀찮지만 나는 요가란 내가 걸어온 길 위에서 발전적이면 발전적이었지 결코 엉뚱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좋은 자세를 가질 수 있는가는 내 인생 최대의 화두 중 하나였고, 나는 항상 좋은 자세가 바른 마음과 정신을 만든다고 믿어왔던 사람이었다(물론 실천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엄밀히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성이 다분한 요가를,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단련하는 운동인 요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내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요가는 혼자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문고리를 살살 닫는 것, 화장실 슬리퍼를 다음 사람이 신기 편하게 놔두는 것, 숨소리를 남들에게 안 들릴 정도로 최대한 가늘게 내뱉는 것, 이것 모두 참된 요가인의 자세이다. 그런데 이건 요가인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산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를 바르게 키워 사회의 모범적인 일꾼으로 내보내고 싶어 하듯, 요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바로 요가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지. 좋아하면 닮아간다 했으니까, 그래야지. 그럼 여기서 이만 나마스테_()_


p.s 책톡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이랑 톡톡이라는 이름 자체는 다소 진부하다. 왠지 지상파 방송의 아침 교양 프로그램 같은 느낌을 준다. 단아한 여자 아나운서와 중년의 평론가가 나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는 훌륭하지만 꾸준히 시청하는 사람은 드문, 그런 조금 불쌍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왠지 내 자식 같아서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꾸준하다. 이렇게 꾸준히 제시간에 업데이트되는 방송이 얼마나 될까. 방송국이나 기업에서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만큼 성실한 방송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비결은 안정된 체계에도 있지만 멤버들의 꾸준함이 가장 큰 것 같다. 고래는 자신을 게으르다 했지만, 적어도 책톡의 고래는 게으르지 않다. 고래가 던지는 호기심 만땅한 질문이 나는 좋다. 중백의 허무한 말장난도 매우 꾸준하다. 옆에서 지켜본 바 중백은 방송 때 가장 침착하다. 꾸준히 그런 침착함을 유지해주는 것만도 감사할 만한 일이다. 서아는 꾸준히 허둥지둥이다. 예측할 수 없다고 할까, 그녀의 톡톡 튀는 매력이 칙칙한 우리를 조금은 밝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오늘 서아는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버렸다.
   편집을 많이 하다보니 서로의 말버릇을 거의 파악해버렸다. 그…저는…긍까 이제…예컨대…꿀떡, 중백의 침 삼키는 소리까지. 말버릇만 들으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지루할 수 있는 편집작업도 멤버들의 말버릇이나 말실수를 놀려대며 재밌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우린 사실 방송이 끝나고 곱게 집에 간 적이 없다. 거의 전무하다. 매번 막차시간까지 방송 얘기를 안주 삼으며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매주 불금을 보내고 있는 격이다. 그래서 매주 책을 읽어야 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이 사람들을 매주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책톡에 들어온 처음 목적은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또 들어준다는 것. 그것이 즐겁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지금 학교 도서관 지하 매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옆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커플이 테이블 위에서 서로의 손을 더듬으며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는 풋풋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까르르 까르르… 전혀 웃기지 않은데도 웃어주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다. 우리 방송을 들어주는 청취자분들께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항상 부족한데도 들어주시는 청취자분들 고맙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만, 아리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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