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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성노동자 권리모임 'GG' 활동가 인터뷰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1. 30.

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56화 2부에서 언급했던 성노동자 권리모임 'GG'의 활동가를 인터뷰했던 글입니다. 당사자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첨부합니다. 

❈ 2014년 6월에 발간된 '연희관 015B' 1호에 실린 글입니다. 

❈ 'GG'는 현재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커버스토리 ‘성노동’

밀사·연희 인터뷰


들어가며

민지, 희조 


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751번 버스가 집으로 향할 때마다 지나치는 거리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내가 사는 곳은 가좌동.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면 닿는 동네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들을 눈으로 쫒으며 그 익숙함에 묘한 위로를 받을 때쯤, 그러니까 가좌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재래시장을 지나 호프집과 치킨집이 즐비한 거리를 지날 때쯤, 내 눈에 들어오는 붉은 간판이 있다.    


  


우리는 이런 간판들을 쉽게 마주한다. 가끔은 문틈으로 붉은 조명 아래에서 다리를 꼬고 손님을기다리는 여성들을 볼 수도 있다. 성매매 업소, 그리고 겉으로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기능을 하는 수많은 변종 업소. 뻔히 드러나 있지만, 못 본 척 지나쳐야할 것 같고, 그 안에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무엇가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호기심과 경계심 외에도 왠지 모를 불쾌한 감정이 더해진다. ‘쎅시한’ 간판과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간판이나창문에 진열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야릇한 문구나 붉은 커튼, 빨간 조명등만이 아니다. 사실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젊음’, ‘여성성’, ‘은밀함’ 등과 같은 섹슈얼한 상징들이고, XX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나(여성들)에게 얼마든지 부여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그것들이 소위 ‘상품화’되어 노골적으로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유쾌하게 넘기지 못한다. 그것이 여성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 느끼고 나도 그 타겟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나와 다른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선을 그으려 노력한다. 이러한 태도는 나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이는 대학에 들어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남성이 구매자인 경우가 대다수인 성상품화나 성매매는 남/녀 간의 위계관계를 묵인하고 공고화시키는 것”이라는 다소 진부한 ‘언어’로 강화되곤 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정리된 ‘언어’들은 내가 이렇게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분노를 느낌으로써 일종의 책임을 다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자는 외침... 그러나 


지난겨울, 이 세상에 ‘안녕들하십니까’를 외치는 수많은 자보들이 대학 캠퍼스의 벽면을 장식했다. 철도노동자 파업에 대한 지지에서부터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솔직한 이야기까지 나는 안 보는 척 그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곤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저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입니다.”로 시작하는 한 자보도 그 중 하나였다. 


“요즘 ‘안녕들하십니까’가 정말 유행이기는 한가 봅니다. 성매매를 하러 온 구매자 남성이 자신도 자보를 썼다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더. 거기제대로 호응하지 않았다고 주먹질을 당해야 했습니다.…돈의 출처는 묻지 않고 그저 돈 벌어오라고 하는 사람들. 결혼도 안한 여성이 산부인과 드나든다고 경멸하는 눈높이. 쉽게 돈 번다고 마냥 욕하는 사람들 성매매 한 번에 몇 십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성들의 재력은 묻지 않고 여성에게만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나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국민저널




어느성매매 업소 밀집역에 붙어있더라는 이 자보에 “정신병자”, ”창년 좀 보소“ 등 자보를 쓴 여성에 대한 온갖 인격 모독적인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은그렇게 충격적인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페이스북과 같은 실명제 공간에서조차 입으로는 내뱉지 않을 말들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하는구나, 오히려 그게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우연히도 성신여자대학교에서도 ‘성노동자’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한 자보가 붙었다. 


“성노동자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이는 '매춘부', '창녀'로 불리어 왔던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선언하면서 사람들에게 호명하기를 요구한 명칭입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멸시와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선언하기 위해 성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칭했습니다. 저희는 성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하여 활동하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활동가입니다. 저희는 성노동을 하고 있거나, 예전에 성노동을 했거나, 성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성노동과 성노동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경직된 도덕주의를 내세워 그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손가락질합니다. 하지만 이 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성노동은 일상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은 한없이 불안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그들의 삶을 멋대로 판단하고 낙인찍으며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때문에, 그들의 일상은 불안으로 뒤흔들립니다. 국가에서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하는 와중에 여러 폭력 상황이 닥쳐도 성노동자는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노동자들의 일상은 점점 위축되어 갑니다. 사회가 주는 지속적인 낙인감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편협한 시선은 곧바로 그들에게 고통으로 내리 찍힙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이 혐의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보는 “정치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학교의 승인을 받지 못해 바로 다음날 철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도 ‘성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대학생 사이에서 이렇게 전면적으로 나온 것은 처음인지라 눈길이 갔다. 사실 대학생이 성매매의 판매, 구매 모두에 적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흔히 “입대 전, 혹은 군대 휴가 나와서 단체로 업소에 몰려 간다더라”, “여대생들은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더라”와 같은 소위 ‘카더라’ 통신에 의해 대학생들이 성매매 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하곤 했다.


그러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심지어는 운동을 직접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성매매 여성들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그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이 자보는 그동안 내가 대학(선배·강의·책 등)에서 키웠다고 믿었던 여성주의적 ‘허세’와 ‘감수성’이 ‘같잖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는 성매매 단속현장을 보도하는 기존 언론이나 성매매 여성들을 현장에서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여성단체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조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인터뷰 


3월 어느 늦은 오후

@ 영등포역 근처 카페

취재 민지 희조 나실 다해

정리 희조


성노동자 권리모임 ‘GG’의 활동가 밀사와 연희를 만났다. 둘 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고 연희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현직 성노동자1다. 밀사는 여성학 수업에서 여성가족부에서 만든 성특법 홍보 영상을 보던 중 탈성매매 여성이 “지금 하는 일이 성매매를 할 때보다 버는 돈은 적지만, 돈의 가치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왜 거기서 버는 돈은 부끄럽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 걸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 그녀는 성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여직접 성노동을 해보기로 결심을 하고 조건만남을 통해 한 달여 동안 성노동을 체험했다. 그녀는 ‘성노동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경험을 블로그에 올려 세간의 관심(혹은 질타)을 얻기도 했다. 연희는 2008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집에서 나와 친구와 자취를 했는데, 생활비가 모자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에서 일하던 바의 사장님의 소개를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둘은 현재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해 활동하는 성노동자 권리모임 ‘GG’에서 활동하고 있다.

 

GG는 지난 2009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5주년 토론회를 열며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성노동자 투쟁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1년 후 ‘전성노련(전국성노동자연대)’이 만들어졌다. 전성노련에 연대하던 사람들이 ‘성노동네트워크’라는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는데, GG는 여기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2 GG는 성노동의 알선자, 구매자, 판매자 모두의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성노동을 다른 노동과 달리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고 이를 규제, 관리하는 경향을 보인 독일의 성노동 합법화에는 반대한다. 또한 스웨덴과 같이 성매매 여성만 비범죄화하는 것도 구매자들이 처벌받지 않기 위해 성매매의 증거물이 될 수 있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등 오히려 여성들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GG는 작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9주년을 맞아 이상적인 성노동 비범죄화를 모색하기 위한 <라운드 테이블 : 성노동 비범죄화> 토론회와 <안전한 섹스, 즐거운 섹스>라는 제목의 대중강좌를 열었다.

(www.ggsexworker.org)



“나 이 일하는 사람인데, 너 응원해”

Q1. 밀사와 연희, 둘이 만나게 된 계기는?


연희: 2011년에 밀사가 블로그에 올린 성노동일지가 익명사이트들에 뿌려졌었다. 그런데 밀사가 거기서 엄청 까이고 있었다. “이런 애가 다 있냐.”, “이상하다.”라는 반응들이었는데, 댓글이 1000개, 1300개나 달리면서 엄청 까이고 있는 거다. 근데 나는 밀사를 되게 신기하게 봤다. 내가 집장촌에 있을 때는 ‘여성단체’라고 하면 인식이 되게 나빴다. 와서 푼 돈 안겨주고, 머리끈, 머리삔, 과자 몇 개 갖다 주고.. 솔직하게 우리가 머리끈 없어서 이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습게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거 필요 없어! 우리가 이런 거 못 살 것 같아? 너네보다 돈 잘 벌어!”이런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밀사를 보고 많이 놀랐다. 여대생이 가지고 있을 법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이 (성매매) 산업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올린다는 게 힘들지 않나. 그리고 이 아가씨가 심지어 그 게시판에 있더라. 자기가 욕먹는 걸 다 보고 있더라. 


밀사: 다 봤다. 다 봤다ㅋㅋ


연희: 막 댓글 달고 있는 거다. 그래서 너무 안쓰러웠다. 내가 그 입장에서 욕먹고 있으면 화날 것 같았다. “나도 이 일하는데, 너네가 뭔데 욕해?”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연락해서 “나 이 일하는 사람인데 너 응원해.” 이렇게만 보냈다. 계속 연락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와서 같이 대만 성노동자단체인 코스와스(COSWAS)를 만나러 가자 그랬고, 그 이후로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다.


Q2. GG는 성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노동으로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흔히 “성은 거래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밀사: 성은 흔히 신성하고 사적인 것이라고들 얘기하는데 오히려 성은 거래가 아니면 발현될 수 없는 어떤 상태이자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성매매가 아닌 다른 성적 관계도 반드시 거래의 속성을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private sex와 성적 거래로써의 섹스는 서로를 모방하고 있다. 이 둘은 어떤 측면에서 구분되어왔고 덩어리로서는 두 개로 존재하지만 실은 예전부터 서로를 모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이 자신의 처와 섹스를 하는 것과, 성매매업소에 가서 섹스를 하는 것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가?


연희: 둘 다 거래의 속성을 수반한다는 거다. 남편과 아내의 섹스는 장기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이 되고, 반면에 성매매에서의 섹스는 일회적이고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낙인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들은 있겠지만, 둘 다 거래의 속성은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편과 처의 섹스에서는 무엇이 거래된다는 말인가?

 

밀사: 남편이 가진 힘과 돈과 지위 같은 것들이다. 여성은 항상 그렇게(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가 여성과 남성의 일종의 공모라 이야기될 수 있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Q3. 그렇대도 성은 다른 노동과 다르게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큰 요인을 차지하는 경우가 제일 많지 않은가?


밀사: 각 노동에는 고유의 특성이 있고, 그런 점에서 성노동도 특정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밝혀내는 게 우리의 몫이다. 근데 오히려 밥벌이로서의 노동으로 생각해보면 다를 바 없다. 일하기 싫을 때 있고, 일하는 게 기꺼울 때 있고, 손님하고의 관계에서 보람을 느낄 때도 있고 짜증을 느낄  때도 있고, 되게 비슷하다. 그냥 사람살이다. 물론 나도 성노동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래도 되나?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는 건가?”와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그럴 필요 없겠구나. 이것도 다르지 않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노동도 마찬가지이다.


연희: 처음에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할 때, “나는 정말 이러면 안 돼. 나는 창녀가 아니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길에 사람이 없으면 계속 공부했다. 열심히 살아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사회적 낙인이 체화되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웃기는 일이다. 빨간 불에서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ㅋㅋ 


Q4. 만약에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노동을 인정하게 되면 사회 내의 가부장적 관습을 묵인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어쨌든 남성이 성구매자인 경우가 많고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 여성계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밀사: 절대로 동의 할 수 없다. 묵인하는 게 아니고 까발리는 것이다. 그들(주류 여성계)은 성노동을 인정하게 될 때 자신들이 얘기해왔던 신념이나 가치관들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을 일단 인정하고 난 이후에야 그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던가, 올바른 인식이라던가 올곧은 직시가 가능하다. 성노동을 인정하는 것은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겠다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이 앞에서 불성실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인건데, 그것을 묵인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눈 가리고 아웅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그들도 성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진 않는다. 어떤 면에서 불성실하다는 건가?

 

밀사: 성매매라는 활동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게 여성이 남성에게 주로 성을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사실은 비유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있네.” 어쩌네,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비유적 강간이 아니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에 (완전하게) 성평등한 사회라면 거기서의 성매매 산업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성매매/성산업/성노동의 양상도 분명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넣으려고 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성매매 없애야 한다, 잘못됐다”라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불성실하다고 느껴진다. (앞의)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노동 운동이 존속해야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내가 제공하는 것은 성적 서비스지, 너의 1시간 노예가 아니다.”

Q5. 그럼 본인이 바라는 성노동의 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밀사: 곧이곧대로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공하는 것은 성적 서비스지, 너의 1시간 노예가 아니다.”라는 것을 구매자도 똑바로 알고 노동자를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너는 그렇게(노동자를 존중)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걸 알아줬으면 한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은데. 감정 서비스 노동자들이 처한 것과 성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콜센터 노동자들 얘기 들어보면 “(상담 중 들었던) 폭언에 대해서 다 잊어버려라”라고 말하는 게 노동의 조언 거리가 된다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슬펐다. 한편으로는 전체적인 노동 관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들이 권리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성노동자들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Q5. 여성단체 중에서는 성매매 근절을 주장하면서도 당사자들의 자활에 집중하면서 성노동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단체들도 있다. 그 단체들이 진행하는 상담프로그램이나 교육프로그램과 GG가 진행하려는 사업은 어떤 차이점을 지니는가?


밀사: 아무래도 성노동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명백한 노동이라고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하는 사업은 다른 활동과는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반성매매에서의 자활, 상담 활동 같은 것들은 사후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을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성노동 관련 상담도 할 생각이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갈 생각이다. 그런 측면으로는 반성매매진영이 진행해왔던 상담과는 결이 많이 다를 것이다. 일단 성노동자들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같이” 풀어나간다는 느낌이지 (외부에서) 도움을 준다는 게 아니니까. 



“당사자가 아니어도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의무가 있다.”

Q6. 아까 얘기했듯이 이 직업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누군가의 성노동 경험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운동이 성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일반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희: 노동운동 자체가 각기 이슈의 모든 노동자를 일반화해서 운동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온양에서 일을 2년 동안 했었는데, 현대자동차나 쌍용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공장 손님들이 많았다. 파업을 해서 일찍 끝나는 날에는 손님들이 낮부터 많이 왔다. 근데 얘기를 들어보면 각자마다 생각이 달랐다. “노조가 있는 것 자체가 나쁘다. 회사에 피해가 된다. 사실 이 정도 받는 거면 아무 말 할 수 없지 않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성노동운동을 싫어하는 언니들도 되게 많다. 우리가 성노동을 합법화시켜야 한다고 그러면 “너는 아가씨들 인생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결혼도 못하고 이직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소문나고..”라며 싫어하는 언니들이 많다. 우리는 업소 등록제에는 반대한다고 얘기해도 이미 거부감이 (굳게)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에 “정말로 이렇게 해서 (우리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좋겠다.” 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나 다양하다.


밀사: 각자의 경험은 다양하고,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양할 것이다. 우리도 어떻게 해야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잘 나눠서 이 운동성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성(“당사자의 문제는 당사자가 가장 잘 말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라는 것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것만을 좇아가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의 발전가능성들을 당사자에게만 맡겨버리는 것 같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다양한 당사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되, 운동에 대한 신념과 주관은 있어야한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당사자들의 처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Q7. 그럼에도 이미 낙인이 박힐 대로 박힌 이 척박한 사회에서 성노동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교육 수준이 높고 자의식이 강한 여성들만 공감할 수 있고 실제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운동 아닌가.


연희: 내가 많이 하고 있는 고민이다. 아가씨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우리가 쓴 글들을 전혀 읽어 내지를 못한다. 우리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이나, 지지하는 분들이나, 인터뷰하러 오는 사람들이 이미 너무 엘리트고, 우리가 말하는 대상이나 구호나 단어 사용 자체가 이미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너무 다르다. 성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하면 분명히 (그들에게도 ) 문제의식들은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나아지고 싶다. 단속받고 싶지 않다. 경찰에 잡혀가고 싶지 않다. 돈을 안전하게 벌고 싶다 등등 “더 나아지고 싶다”에 대한 욕망은 분명 있다. 이들의 욕망을 어떻게 고취시킬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굉장히 쉽게 얘기하려고 노력한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도 뭐 일하는 사람들이랑 똑같이 돈 받는 건데”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한다. 이렇게 가볍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동안)우리가 너무 묵직하게 풀어냈다는 생각을 한다. 당사자들이 얼마만큼 글을 읽어낼 수 있고, 우리가 어디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한테 제일 큰 과제 인 것 같다.


밀사: 각성된 민중들의 봉기는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계기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고, 페미니즘도 중산층 부르주아지에서 시작됐다고 비판을 받지만 그게 왜 비판받을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터뜨려주는 게 중요한 거지, 그게 뭐 부르주아지에서 왔는지, 범죄자 집단에서 왔는지 알게 뭐냐. 일단 운동의 씨앗이 터져나갔다는 것이 중요한 거고  그게 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연희 말이 맞지만. “너희끼리의 운동이잖아”, “어차피 시작은 성노동자 당사자가 아니었잖아”라고 하면 되게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성노동자 개개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성노동자였나? 아니지 않나. 그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이라던가 억압의 담화들을 다 습득하고 자라나는데, 그런 상태에서 성노동자가 됐을 때 자신의 일을 곧바로 긍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이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고 너무 쉽게 비판하지 말라.)


Q8. 앞으로 다른 여성 단체들과 교류할 계획은 없는지? 


밀사: 하고 싶다. 성매매/성산업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문제들은 문제제기해야 마땅하고, 반성매매 운동 진영이 그 부분에 기민했던 것은 긍정적이었고 그런 운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매매가 본질적인 폭력을 내포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기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성노동 운동과 반성매매운동이 동시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가며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그 간판들을 마주친다. 그 익숙한 풍경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 안에 있을 사람들, 그들이 나눌 대화,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일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한다. 문득 그들의 삶이 나의 삶과 비슷하게 녹록치 않으며 또 그만큼 다분히 일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애인은 있는지, 일하면서 만족을 느낄 때는 언제고 힘든 때는 언제인지. 이제까지 가려져왔던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지 나는 아직 너무 서투르다. 그러나 그 질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던질 질문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질문이 나는 궁금하다.   

     

시간을 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밀사와 연희에게 큰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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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자발적일 수 있냐고? 


그동안 여성주의 진영에서는 자발적인 성매매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깔려 있었다. 돈이 급하지 않다 한들 누가 자기 손으로 성매매를 선택하겠는가?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성매매 여성들은 빈곤과 같은 구조적 강제에 의해 ‘피해자’로 상정되었었다. 성매매특별법도 이와 같은 인식에 기초해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비범죄화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라는 제한된 스탠스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다. 성매매가 불법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자신이 ‘강제적 성매매’의 피해자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보호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단속, 처벌 대상으로 분류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범죄자로 분류되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성매매 종사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해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논쟁은 더욱 공론화되었다. 


그러자, 강제적 성매매와 자발적 성매매를 구분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상황 속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실과 스스로 성노동을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이들 모두를 무시하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발과 비자발 혹은 강제의 경계는 어디인가? 경제적인 빈곤 때문에 성매매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강제적 성매매인가? 그렇다면 왜 다른 노동은 강제와 자발을 구분하지 않는가? 이와 같은 딜레마 때문에 최근에는 여성이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 성노동자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 



경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는 주류 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성녀와 창녀의 구분을 거부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집장촌에서 성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필리핀의 젊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부클로드’라는 성매매 여성 쉼터에서 같이 살아가며 노동과정에서 낳은 아이들을 같이 키우며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이다. 쉼터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애인이다. 그들에게 성노동은 정말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현재 GG는 <레드마리아 2>라는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의 출연자로 섭외되어 경순 감독이 그들의 일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우리 인터뷰 장면도 촬영을 당(?)했다. 신문 기사로만 보던 밀사와 연희가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전 세계의 성매매 정책



 


* 파: 공창제 시행

* 초: 사창가는 불법이지만, 매춘은 규제하지 않음

* 빨: 매춘 규제

* 회색: 데이터 없음

  출처: 위키백과




  1. 성노동이라는 용어가 거북한 사람도 있겠지만 성노동자(라고 불러지길 희망하는)들을 존중하여 글에서는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2. 밀사 인터뷰, 국민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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