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톡의 슈퍼스타..... 아니 언젠가 누군가의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고래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시죠? 저 그림에 빤스입은 슈퍼스타처럼 다니시다간 여러모로 큰일납니다.
죄송합니다. 글이나 쓰겠습니다.
오늘은 43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오프닝 때 읽어 드린 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우선 제가 오프닝 때 읽어 드린 글을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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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말고, 받을 수 없는 공은 받지 마라>
오늘 이야기 할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온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언뜻 보면 할 수 없는 건 애초에 하지마라, 할 수 있는 것을 해라라는 의미 같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다른 의미가 보이기도 합니다.
<칠 수 없는 공은 거부하고, 받을 수 없는 공 또한 거부하라>
우리 사회에는 치지도, 받지도 못하는 공을 던지는 수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반드시 스윙을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자자, 너넨 잘! 휘두르기만 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세 번의 기회를 줄게”
세 번의 헛스윙은 아웃입니다.
책이랑 톡톡에서 다뤘던 최규석 작가의 ‘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회의 고달픈 상황에 처해 있는 주인공 원빈은 “그렇다고 울기도 웃기도 애매하잖아.”라고 말합니다.
이때 태섭쌤은 반문을 하죠. “울고, 웃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화내는 방법도 있잖냐.”
마찬가지로, 타석엔 안타나 아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칠 수 없는 공을 스스로 거부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거부의 결말은 아웃이나 운 좋으면 볼넷밖에 없지 않겠냐구요? 맞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칠 수 없는 공에 거절의 옵션을 선택한다면 나는 야구를 즐길 수 있고, 운 좋으면 상대팀을 약간 약 오르게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야기 할 이 책 또한 이러한 삶은 즐거울 수 있단 걸 보여주는 소설 입니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지금부터 다양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기는 책이랑 톡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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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프닝에서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말고, 받을 수 없는 공은 받지 마라’ 이 말을 ‘거부’의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거부를 하며 세상을 사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선, 타석에 들어선 순간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스윙을 해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네가 스윙을 하지 않으면 어차피 네 손해다. 스윙하지 않으면 네게 주어지는 것은 룩킹 삼진(공을 바라만 보다가 삼진아웃 당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굉장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입니다. 내 앞 사람도, 내 뒷사람도 타석에 들어가서 방망이를 돌립니다. 물론 아웃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타나 홈런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웃을 당하더라도 굳이 주어진 타석 기회를 거절 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절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사람들로부터 발생합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개념이긴 합니다. 어느 정도의 공을 칠 수 있는 지는 개개인마다 다른 것이죠. 하지만 유소년 야구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경우, ‘유소년 야구 선수가 안타를 친다’에 배팅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말도 안 되게 언밸런스한 경기가 세상엔 허다합니다.
하지만, 의문이 계속 듭니다.
'아니, 그런 공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어도 타석에서는 최선을 다해 쳐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손해 보는 게 없잖아'
과연 정말 손해 보는 게 없을까?
손해 보는 게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야구의 타석은 기록이 됩니다. 우리 삶속의 타석들도 우리의 몸속에 기록이 됩니다. 상대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질 때 치지 못하는 패배감은 전부 우리의 몫입니다. 여기서 상대 팀은 우리에게 몰아칠 수 있는 찬스가 오는 것이죠.
“분명 룰에 따른 경기고, 너와 나는 균등한 기회를 받았다. 이긴 건 우리 팀이고, 진 것은 너네 팀이다. 공을 못 친 것은 순전히 너의 탓이다. 네 실력부족, 네 노력부족이다.”
이러한 원망의 소리는 경기하는 상대팀뿐만 아니라 우리 팀 안에서도 들려옵니다.
“1,2번은 다 잘 쳐서 저렇게 출루했는데, 왜 너는 그 모양이냐. 너 하나가 못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고 싶은 거냐?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너는 선발 엔트리에도 못 올라 갈 줄 알아라.”
아, 이 폭력적인 패배감은 우리 몸 속 깊이 기록 됩니다. 기록을 보니 내가 무진장 못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공을 맞아서라도 출루 아니, 출세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기서 다시 의문을 제기 할 수 있습니다.
'죽어라 노력해서 실력을 쌓으면 언젠간 메이저리거의 공도 칠 수 있지 않겠는가?'
맞습니다. 죽어라 노력해서 실력을 쌓으면 언젠가 메이저리거의 공도 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메이저리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겨우겨우 메이저에 들어가도 거기서 선발을 뛰는 사람은 또 걸러집니다.
그래, 그러면 어쩌라는 것이냐. 한번 들어나 보자.
앞서 말했듯이, 저는 타석에는 안타나 아웃이 아닌 ‘거부’라는 옵션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거부라는 것의 결과는 아웃이나 운좋으면 볼넷 아니겠냐구요? 맞습니다.
하지만, 거부를 하면 야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애초에 내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상대에게 초조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상대방의 공에 끙끙대다가 아웃되는 것과 스스로 공을 치지 않고 아웃되는 것의 차이는 꽤 큽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자발성’입니다. 다시 말해, 거부는 자신의 의지로 실현 가능합니다. 어차피 칠 수 없는 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눈 앞에 있는 투수의 공을 거를 때, 우리 안의 패배감은 줄어들 것입니다.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칠 수 없게 한 것이죠.
지금까지 적은 글들이 개인의 패배감은 순전히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사회, 갑들의 탓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각자의 노력도 필요 합니다. 적어도 야구의 룰을 익히고, 타격 훈련도 해보고, 상대팀을 정해서 경기장, 타석까지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자발적인 결정으로 해보자는 것이지요. 타석에 들어가는 준비부터 시작해서, 타석에 서서 공을 받을때까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마주 할 패배 할 수 밖에 없는 경기까지 조금은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말고, 받을 수 없는 공은 받지 마라>
자발성을 갖고 살자는 의미로 제 마음 속에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고맙습니다. 시험기간에 감기까지 걸려 ‘과도한 시험 범위는 과연 칠만한 공인가’를 한참 생각한 고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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