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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주 다양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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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고래] 어쩔 수 없다는 것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9. 6. 9.

안녕하세요. 고래입니다.

일기 같은 글입니다. 약간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모순...)

혹시, 좀 더 책 감상문?에 가까운 글에 관심 있으시다면 
blog.naver.com/whalespouts 여기로!
잘 안 하는 블로그지만 2017년 말에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로 써둔 글이 있습니다. 

아, 한 가지 더 곧 감질클럽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거예요. 기대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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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민규의 <카스테라>, <제10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방송을 녹음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이 말의 느낌은 복잡하다.

-핑계 같은데?
-진짜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잖아.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니야?
-아니 그게 어쩔 수 없다니까.
-제대로 시도는 해본거야?
-노력으로 되지 않는 어쩔 수 없음도 있는 거야. 정말 어쩔 수 없어.

그럴듯한 자기변호는커녕 어떻게 물어도 어쩔 수 없다고만 대답하는 '어쩔 수 없음'이 어딘가 안쓰럽다. 무엇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세상엔 실제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외부요인들이 존재한다. <시크릿>처럼 내 소망과 욕망을 간절히 떠올리기만 한다고 되는 건 없다. 긍정적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얘기로 해석해도 외부요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개인의 치열한 노력 주변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한다. 예컨대,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정규직 전환을 위해 페니스를 빨아야 하는 화자의 상황이 그렇다. 업무에 대한 노력과는 별개로 부장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수치스러움을 견디는 것도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화자 외에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는 7명의 인턴들에겐 왜 부장의 팬티를 벗겨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까. 그들 역시 자신의 노력과는 별개로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왜 정규직 전환에서 떨어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져봤자 정확히 대답할 리가 없다. 알 수 없다. 결국, 노력 부족인 것 같다고 자책할 수밖에. 어쩔 수 없이 말이다.

또 다른 어쩔 수 없음은 컨트롤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화자는 자신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지만 선택하지 않는다. 세상의 눈에 그것은 광견병에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정상이 되고자 하는 욕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고 싶은 마음. 왜 나의 욕망이 아닌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게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상에 둘러싸여 있는데 어찌 쉽게 반항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왜 부장의 페니스를 빨아야 하는지. 죽어라 노력했는데 왜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건 지. 세상이 이상한 걸 인지하면서도 왜 그 기준에 맞추려 발버둥 치는지. 어차피 원인을 다 알 수는 없다. , 원인을 알아도 대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이 순간 튀어나오는 말이 어쩔 수 없어. 이 말은 자기변호다.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야하며 다독여주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음을 외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작은 반항이기도 하다.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말조차 개인의 부족함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잖아.’

요즘 들어 자꾸만 이 말이 튀어나온 걸 보니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보려 했고, 그러다 또 그저 그런 의문이 생겼나 보다. 어쨌든 자책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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