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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고래]책 속에 밑줄 긋기_국가란 무엇인가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7. 12. 17.

안녕하세요. 고래입니다. 오랜만에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블로그에 글을 쓰네요. 얼마 전부터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을 제 개인 블로그(www.blog.naver.com/whalespouts)에 타이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북클럽 회원분들도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 

예전부터 해야겠다 마음만 먹고 미루던 것인데 막상 하니까 좋은점이 많습니다. 타이핑하면서 그 부분의 의미를 곱씹다보니 책 전체를 다시 읽는 느낌이 듭니다. 개인블로그 한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올리지 않아 신경쓰였는데, 이 고민도 해결해 준 것 같습니다. 리뷰를 쓴다고 생각하면 글 올리는 게 부담스러워질 것 같아서, 정말 짧은 소감과 타이핑만 쳐서 글을 올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물론, 지금 올려진 세편의 글은 감상을 꽤 길게 쓰긴 했습니다만...  앞으론 타이핑만 올릴 책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시작으로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밑줄을 치며 읽었는데요. 이 책은 타이핑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지 못 했다는 것이 맞겠네요. 이유는 밑줄이 너무 많아서 입니다. 타이핑 할 바엔 책을 다시 읽는게 나을정도로 밑줄이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책에 국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주제와, 이를 설명한 수 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을 친절하게 풀어내주시다보니 밑줄이 계속 많아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야 나의 평소 배경지식 부족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지만, 소설을 읽을 때도 밑줄 칠게 많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밑줄을 쳐야 할 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금방 내린 결론은 <읽으면서 '밑줄 치고 싶다'란 느낌이 상당히(?) 드는 부분>에 밑줄을 치는 것 입니다. 상당히 막연하죠? 그러다보니 책 읽다가 내용을 곱씹는 게 아닌 밑줄 쳐야되나 말아야 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그렇다고해서 딱딱한 기준을 정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아마 저 말랑한 기준을 계속 사용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책은 그리 인상 깊지 않았는데 밑 줄이 많이 그어질 수도 있고, 어떤 책은 아주 인상 깊었는데도 밑줄이 적을 수 있는 상황이 적잖아 발생하겠죠. 그래도, 밑줄칠 곳이 많은 책이 좋은 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네요.  

물론,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밑줄 칠 곳이 많으면서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중심으로한 통치자, 애국심, 진보정치 같은 키워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책 속의 수많은 밑줄 중, 몇개만 추려서 옮겨 적고 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래였습니다. 날이 춥지만 따뜻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P.S 저도 국가란 무엇인가를 꼭 한번 다시 읽고, 지금보단 약간 추려졌을 밑줄을 꼭 타이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연필이 아닌 지우개를 들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책 속 밑줄 ( '=>...'은 제 메모입니다.)

P171.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회혁명이 이런 참극을 빚어낸 것일까? 혁명가들의 잘못 때문이었을까?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였던 한계는 곧 인간 일반의 한계이기도 하다.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인간의 능력 그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P222.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어 국가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종국적으로 시민 각자가 훌륭해지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 각자가 훌륭하지 않아도 시민 전체가 훌륭할 수는 있겠지만, 시민 각자가 훌륭하면 더 바람직하다. 각자가 훌륭하면 전체도 훌륭할 것이기 때문이다. 

=> 훌륭함은 무엇일까?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 상생. 공존. 다름을 인정. 


P295. 스스로 세운 행위의 준칙이 아니라 단순한 '끌림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면서 '실용적 처세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다수 대중의 요구와 그들이 요구하는 행위의 준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질'의 위험을 안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 그것이 정치를 통해서 선을 추구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 이토록 위험한데 왜 정치인 되고 싶어 할까? 정치인의 '정치를(통해 선을 추구)하려는 것'도 정치인 개인의 '끌림의 충족'을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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