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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중백] 그래서 화씨벽이 뭐라구요?

by 중년백수 2017. 9. 17.

안녕하세요 중백입니다.

이번 6화 오프닝에서는 '완벽'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방송 중에 엉성하게 전달해드렸던 내용을 이 자리를 빌어 as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먼저 '화씨벽'이 무엇인지 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편(和氏篇)〉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에 화씨(和氏)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초산(楚山)에서 옥돌을 발견하여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옥을 다듬는 사람에게 감정하게 하였더니, 보통 돌이라고 했다. 여왕은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해 그는 왼쪽 발을 잘랐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다. 무왕이 옥을 감정시켜보니 역시 보통 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무왕 역시 화씨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는 오른쪽 발을 자르게 하였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나중에는 눈물이 말라 피가 흘렀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 “천하에 발 잘리는 형벌을 받은 자가 많은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냐.”고 까닭을 물었다. 화씨가 “나는 발을 잘려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벌을 준 것이 슬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왕이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 명옥을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씨지벽 [和氏之璧] (두산백과)


이정도면 일단 '화씨벽'이 뭔지는 아시겠죠?? 그런데 방송에서 이 화씨벽으로 진시황이 '옥새'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사실 이것은 100%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증명된 이야기는 아닌 것 입니다. 실제로 화씨벽으로 옥새를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화씨벽'이라는 말은 '최고의 옥'을 뜻하는 수식어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진시황의 옥새는 당나라때까지 전해져 내려오다가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백퍼센트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완벽'의 어원이 되었던 인상여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인상여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시대의 배경에 대해 조금 설명드려볼까 합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 중국, 우리가 흔히 전국시대라고 부르는 중국에는 진,초,제,한,위,연,조 이렇게 7개의 나라가 각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중 진나라가 두각을 드러내며 진왕 영정(훗날 진시황, 시황은 최초의 황제라는 뜻 입니다. 중국 전설속의 왕인 삼황오제 보다 뛰어나다 하여 '황제'라는 명칭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이 결국 천하를 통일하게 됩니다. '완벽'의 이야기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 보다 62년 앞선 기원전 283년의 이야기 입니다. 이때도 진나라는 강대국이었고 조나라는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로 옆 나라 였습니다.



구슬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오다

[完璧歸趙 ]

조나라 혜문왕이 초나라가 잃어버린 ‘화씨벽(和氏璧, 화씨의 구슬)’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때 강대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여러 번 침략했으나 조나라의 대장군 염파가 잘 싸운 덕으로 진나라는 그냥 되돌아가곤 했다. 기원전 283년, 조나라에 화씨벽이 있다는 것을 안 진나라 소양왕은 사신을 보내어 혜문왕에게 이렇게 전했다. “진나라의 성 15개와 조나라의 화씨벽을 맞바꿉시다.”

혜문왕은 대장군 염파 등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화씨벽을 넘겨주었다가 만약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도 못 얻고 화씨벽만 잃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진나라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것을 구실로 조나라로 쳐들어올 것이 뻔했다. 오랫동안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대신을 진나라로 보내어 그 진의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신으로 보내기에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인상여(藺相如)를 보내면 그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천거했다.

진나라 소양왕은 조나라 사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즉시 별궁으로 나가 인상여를 접견했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진나라 왕에게 공손히 바쳤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보배를 받아들고는 한동안 정신 없이 바라보다가 흡족한 표정으로 대신들에게 넘겨주었다. 좌우의 대신들이 화씨벽을 구경하고 나자, 이번에는 처첩들과 내시들이 구경들을 했다. 모두들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를 얻은 것을 경축하느라고 야단이었다. 인상여는 반나절이나 기다렸지만 왕은 언약대로 성을 주겠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화씨벽이 이미 그들의 수중에 있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인상여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는 진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구슬은 이를 데 없이 훌륭한 보옥입니다만 잘 보이지 않는 흠이 딱 하나 있습니다.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왕은 그 말을 곧이듣고 수하를 시켜 화씨벽을 인상여에게 넘겨주었다. 화씨벽을 받은 인상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궁궐 기둥에 등을 기대고 노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당초 대왕께서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는, 성 15개와 화씨벽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조나라 대신들은 모두 대왕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으나 오직 저만은, 일반 백성들도 서로 신용을 지키는데 하물며 진나라 같은 대국의 임금님이 신용을 안 지키겠느냐고 그들의 말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화씨벽을 가져왔습니다. 조나라에서는 이렇게 성실하게 저를 시켜 화씨벽을 가져왔는데 대왕께서는 저를 보통 전당에서 접견하고 태도 또한 오만하시니 언약을 지킬 성의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약속대로 성과 화씨벽을 바꾸시겠습니까? 만약 강제로 화씨벽을 빼앗으려고 하신다면 저는 제 머리와 이 화씨벽을 기둥에 던져 박살내겠습니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끌어안고 노한 눈길로 기둥을 곁눈질하며 당장이라도 기둥에 몸을 던지려고 했다. 왕은 화씨벽이 손상될까 봐 두려워서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고는 연이어 사과를 했다. 뿐만 아니라 대신들에게 지도를 가져오게 해서는 어디어디의 성 15개를 주려 한다고 짚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속아 넘어갈 인상여가 아니었다. 그는 금방 꾀를 또 하나 내어 소양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씨벽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입니다. 화씨벽을 여기로 가져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닷새 동안 목욕 재계를 하고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대왕님께서도 닷새 동안 목욕 재계를 하신다면 이 화씨벽을 바치겠습니다.”

진나라 왕은 인상여가 그물에 든 고기이니 달아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러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온 인상여는 수종을 백성으로 분장시키고 화씨벽을 품에 감춰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닷새 후에 진나라 왕은 구빈대례(九賓大禮)라는 큰 예를 갖추어 조나라 사신 인상여를 접견했다. 인상여는 진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목공 대부터 지금까지 왕을 스무 번이 넘게 갈았지만 그 어느 왕도 신용을 지킨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진나라한테 또 당할까 봐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말에 소양왕은 펄쩍 뛰며 인상여를 손가락질했다. “뭐라고? 내가 오늘 이렇듯 성대한 예식을 차렸는데 네가 언감생심 화씨벽을 돌려보냈단 말이냐? 안 되겠다. 여봐라, 저자에게 어서 오라를 지워라.”

그러나 인상여는 침착히 응대했다. “대왕님께서는 고정하십시오. 천하의 제후들이 진나라는 강대국이고 조나라는 약소국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강대국이 약소국을 억누르는 법이지, 약소국이 강대국을 억누르는 법은 없습니다. 대왕님께서 진심으로 화씨벽을 원하신다면 먼저 성 15개를 조나라에 넘기십시오. 그러면 조나라는 반드시 화씨벽을 진나라에 바칠 겁니다. 약소한 조나라는 대왕의 징벌이 두려워 절대 언약을 어기지 못할 겁니다. 만에 하나, 대왕님이 저를 죽이신다면 천하 사람들이 대왕의 탐욕을 알게 될 것이고 진나라는 신용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청컨대 대왕께서는 좀더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말문이 막힌 진나라 왕과 대신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진나라 왕은 하는 수 없이 외국의 특사를 환송하는 예식을 차리고 인상여를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조나라 혜문왕은 화씨벽을 도로 가지고 온 인상여를 상대부로 등용했다. 성 15개와 화씨벽을 바꾸려는 생각이 애당초 없었던 소양왕도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슬을 온전하게 조나라로 가지고 돌아오다 [完璧歸趙] (중국상하오천년사, 2008. 4. 25., (주)신원문화사)


어떠세요? 인상여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가 조금이라도 생기시나요? 그렇다면 문경지교 [刎頸之交] 라는 사자성어의 어원도 한번 검색해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희조씨가 '일이 되지 않기를'바란다고 하셨는데 벌써부터 다음에 뭘 할지 고민이네요. 눈을 씻고 잘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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