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희조입니다.
52번째 방송 잘 들으셨나요?
이번 글에서는 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소개하면서 제 감상을 덧붙여보려고 합니다.
<60만 번의 트라이,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것>
‘60만 번의 트라이’라는 다큐멘터리는 2014년 발표되었습니다. 오사카의 한 재일조선학교 럭비부 학생들의 생활 모습과 럭비에 대한 열정을 감동적으로 엮어낸 작품입니다.
재일 조선인이란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와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의에 의해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고국에 생활 기반이 남아있지 않거나 정치적 이유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꾸며 귀국 후 생활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재일조선학교의 모태입니다.
재일조선인(자이니치)들은 민단과 조선총련계의 두 파로 나뉩니다. 민단은 친-남한이고, 조총련은 친-북한 계열입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이전까지 강제로 일본 국적을 부여받았었던 재일조선인들은 일제히 ‘조선’ 국적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되자 재일조선인들에게는 일본, 남한, 북한 국적의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재일조선인 중 일부는 세 가지 모두를 거부하고 본래 ‘조선’ 국적으로 남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민단보다는 조총련의 힘이 더 셌고, 북한이 재일조선인 지원에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재일조선인들은 남한보다 북한에 더 정서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일조선학교도 보통 조총련 계열이 많으며(남한의 지원을 받는 한국학교와 구별됨) 소속 학생들은 ‘조선어’라고 칭하는 북한의 언어와 문화를 교육받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의아했던 점이 있습니다. 이 오사카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일본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학생들끼리 있을 때는 조선어보다 일본어를 월등히 많이 사용합니다. 심지어, 이 학교에 들어와서야 조선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조선어 또한 한국어 모어 사용자인 제가 보기에 어색하고 경직된 느낌을 줍니다. 일상생활에서 직접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고 책에 쓰여진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조차 조선어에 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장면이 이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내줍니다. 즉, 그들이 사용하는 조선어는 ‘broken’-조선어, 망가진 조선어입니다.
な、아마 1이것이 틀리고 있습니다.
나의 글씨 어때요? 나의 글씨.
춥지만 그러나 귀엽죠.
입지 않고 있다!
아. 어떤가な. 걱정이다な. (조선어 종결어미 ‘-다’에+일본어 종조사를 결합시켜 감정을 살리고자 하는 예)
헌데, 사실 그렇게 의아해할 일은 또 아닙니다. 현재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재일동포 3세이거나 그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일본에서 태어난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얘기입니다. 조선에서 산 경험이 없는 부모 밑에서 그런 부모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고향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자란 세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위 ‘불완전한’ 재일조선인들이 후손들에게 ‘불완전한’ 조선어를 가르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극히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재일조선인들은 상상 속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상상 속의 언어를 자신의 민족어라고 생각하며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참 후에 든 생각은, 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특수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재일조선인들은 남한도, 북한도, 그들의 조국이 아닌 그렇다고 일본을 자신의 나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집단의식이 확대되어 만들어진 집단입니다. 조선학교라는 공동체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가는 민족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자생적 민족과는 다릅니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재일조선인들이 쓰는) 조선어는 단순히 북한어, 남한어, 한국어로 치환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들 공동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민족감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회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재일조선인들의 민족 감정때문만은 아닙니다. 되려 일본 사회가 재일조선인들한테 가했던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정식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합법적이지 못한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조선학교는 일본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배제되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일본 대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한 자격시험을 따로 쳐야합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이런 문제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활동이 드문드문 삽입되어 있습니다.
"럭비에는 '노사이드 정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노사이드 정신이란 시합 중엔 편이 갈려 사이드가 생기지만 시합이 끝나면 '네 편 내 편'이라는 사이드가 없어져 함께 교류하고 더불어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교무상화 문제는 조선학교만 편을 갈라 따로 떼어내서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사이드를 가르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사이드가 있다는 것이 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사이드가 없어져 교육 현장에도 노사이드 정신이 확산돼 무상화가 반드시 적용되리라 믿습니다." / 오사카 조고 럭비부 주장 김관태(일본어로 말하는 장면)
그들이 만약 일본 내 다른 외국인학교 수준만이라도 정부의 적절한 지원을 받고 조선어라는 일본 내 소수 언어를 학습할 권리를 인정받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재일조선인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유대감은 애초부터 그들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공동체 의식은 일본 사회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낸 정서적 연대감에서 특히 더 발로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국가를 표방하며 이를 국민을 결속시키기 위한 정신적 기치로 활발히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차별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그 반동적 기제로 해당 소수 민족은 자신들만의 특수한 공동체를 꾸려나갔습니다. 이는 위로부터의 민족주의적 차별이 피해자 집단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면서 우리 사회에서 언어가 도구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화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언어의 무지개'를 읽으면서 민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저자가 민족이라는 것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위 사례에서도 민족감정이라는 것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전혀 지나치지 않아보입니다. 단일 민족 국가라는 (국가에서 심은) 환상이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있었던 하나의 근거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상 희조였습니다~
- <임영철, 권은희, "재일조선어 ‘문어체의 구어화’에 대한 고찰 - 다큐멘터리 발화 자료를 중심으로 -“, 일어일문학연구, 2012, Volume 81, Issue 1>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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