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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난 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줄파소 뒤풀이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6. 12. 18.

 안녕하세요 중년백수 입니다.

 책이랑 톡톡 51화에서는 '존 보인'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하 줄파소)을 읽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1부 들으러 가기]

 [2부 들으러 가기]


 

출처 : 알라딘

 줄파소를 읽고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어있는 것은 아니가'였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최악의 상황은 스스로에게 가해자가 되는 것 입니다.

 소설 속에서 브루노(독일인)의 풍요로운 삶은 슈무엘(유대인)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 입니다. 하지만 브루노는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며(물론 슈무엘도 모르지만 피해자인 슈무엘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 혜택을 계속 누립니다. 동시에 슈무엘을 친구로서 좋아하며 진심으로 슈무엘을 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브루노는 결국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죽게됩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집중하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구조'였습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어있을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최악의 경우 그 피해자에 본인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2부에서는 우리 각자가 브루노의 자리에 들어가서 우리는 누구에게 가해자 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3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의류, 신발, 커피 혹은 방송에서 말씀드린 해산물, 동물실험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내지른 그 주먹들이 아직 우리에게는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가까이 다가와 있고 조만간 크게 한방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방송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굳이 반복하지 않고 이 지면에서는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혹은 다소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부 근황토크때 였나요? 사람들이 무관심했기 때문에 저들이 저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왔다는 저의 말에 희조씨께서 '인물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유시민씨를 들먹이며 그에 반박했습니다. 물론 유시민씨 한명이 그 말을 전체를 반박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닐뿐더러 사소한 한 사례가 될 수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 입니다. 하지만 결코 유시민씨 한명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방송상에서 그분들을 전부 언급하고 있을수도 없을 노릇이니 그저 한명을 언급해 보았을 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없다'는 희조씨의 말씀에도 어느 정도 공감은 갑니다. 하지만 그전에 저는 한가지 찔리는 점이 있습니다. 과연 (선거에)나온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을 했나? 한발 더 나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하지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본 적은 있는가? 하는 죄책감 입니다. 제가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당당하게 '뽑을 사람이 없다 뽑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백컨데 저 역시 제가 선호하는 당의 인원이 아니라면 그렇게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저부터도 사람보다는 당을 먼저 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 입니다. 3년 반 전에 대한민국이 문재인이라는 정치인보다 박근혜라는 동물이 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뽑았을까요? 아닐 것 입니다. 박근혜라는 생명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 유전자덩어리의 소속 당, 혹은 선대 유전자덩어리의 후광이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뽑을 인물이 없는 것' 보다는 이것이 더 우리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산에서는 선거유세 도중 사망한 한나라당의 후보가 당선되어 시체가 당선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시체보다 무능하기도 참 힘들었을텐데 상대 후보측이 어지간히도 무능했던 모양입니다. 비단 경상도 지방만을 탓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색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 입니다. 서둘러 쓰다보니 말이 중언부언 하네요. 결론은 인물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그 전에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기는 하는가? 를 한번쯤은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번째로 제가 9살 브루노를 마녀사냥하는 지엽적인 질문을 투척하여 여론의 비난에 뭇매를 맞았는데요. 앞서 말쓰드렸다시피 그것은 이 소설이 표현하고 있는 '구조'를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그 구조를 뚜렷하게 만들고 우리들 스스로가 그 구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브루노 군에게 사과드립니다. Tut mir leid 브루노.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똑바로 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똑바로 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는 구조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분명 달갑지 않은 일 입니다. 더군다가 그것이 내가 안다고 한다한들 바꿀수도 없는 것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죽을때까지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되고 싶은 호모 사피엔스라면 두말할 것도 없겠죠?

 이것으로 52화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무성의한 글 죄송합니다 ㅠㅠ

 다음에는 더 정성스러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책톡!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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