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래입니다.
이번주 업로드 된 49화 양귀자 작가의 <모순> 재밌게 들으셨나요?
오늘은 책이랑 큰 관련은 없지만, 요즘 시국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016년의 마지막 달, 12월 입니다. 시간 가는 게 참 빠르네요.
벌써 6주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라의 시끄러움은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최근에는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났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3년의 공소시효를 채우고 슬그머니 기어나왔습니다.
그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공소시효제도는 형사사법 행정상의 문제인데, 위법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법하지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원칙입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면책되거나 유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소리인 것이죠.
한마디로 무죄가 밝혀진 것이 아니라 제대로 조사도 되지 않은 채로 흐지부지하게 끝난 사건입니다. 물론 여기엔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피해자의 의사도 반영됐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jtbc 팩트 체크를 보시면 쉽게 이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팩트체크] '공소시효 만료' 윤창중 정말 무죄인가? <-클릭)
어쨌든, 그는 나라가 시끄러운 틈을 타 슬그머니 기어나왔습니다.
12월 4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윤창중은 보수집회에 나가서 “제가 정말 성추행했다면 지금 워싱턴 형무소에 있지 않겠냐”며 “결백했기 때문에 노무현처럼 자살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공소시효 만기를 무죄로 해석한 것 보다 더 환상적인 개소리입니다.
그와중에 주인에게 예쁨 받기 위한 꼬리 흔들기는 빼놓지 않고 했더군요.
"박대통령에 관한 문제는 객관적 실체가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
검찰까지 박근혜를 피의자로 입건한 현재, 정말 보고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어떻게 이런 확고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 정말 하는 말만 봐선, 모순일랑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입니다.
이는 비단 윤창중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정치권엔 자신의 생각만이 맞다고 주장하는, 그것이 확고한 믿음이 되어버린 인간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 같습니다.
알면서 모른 척 하는 자들.
안다고 말하지만 손익계산에 바쁜 자들.
손익계산 위에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며 수많은 포장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
뭐가 그리 떳떳한지 아직도 큰 목소리로 떠드는 걸 보면 욕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다행인 것은 현재 대한민국은 그들의 목소리보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12월 3일 토요일. 어제, 6차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과제를 한다는 이유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2~5차 집회에 나가면서 시민들의 힘을 느꼈고, 나도 매주 힘을 보탤 수 있겠다라고 마음 먹었지만 시험기간은 괜찮겠지 하며 나가지 않았습니다. 과제를 하고나니 8시쯤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리고선, 집에서라도 힘을 보태야지라는 생각으로 생중계를 켰습니다. 횃불을 든 선봉대와 그 뒤를 이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것과는 약간 다른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못보겠더군요. 조금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렸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 불빛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게 부끄러웠습니다.
이때, 제 안의 강한 모순을 하나 느꼈습니다.
그토록 현 상황에 불만이 많으면서 한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로 나가지 않은 것을 합리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면서 모른 척 하는 자들.
안다고 말하지만 손익계산에 바쁜 자들.
손익계산 위에 수많은 포장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
나도 결국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 아닐까.
평소,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곤 했습니다.
이번에 다룬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고 모순적 결과에 있어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모순적 존재이고 세상은 물고 물리기에, 살기 위해선 어느정도 모순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론 부정하고 싶지만 모순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올곧더라도 이 한계의 상당부분은 서로 다른 인간이 마주하는 관계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순적 존재라는 것에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순의 결과에 관대할 필요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관대함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모순적 결과를 낼 것임을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 과정엔 적어도 '인정(認定)'이란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불평을 하고 있지만 왜 집회에 나가지 않는가. 그 안엔 과제도 있지만 귀찮음도 존재합니다. 저는 거기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당당한 것은 당당하다고, 핑계는 핑계라고, 부끄러우면 부끄럽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 과정에서 이를 토대로 더 나은 행동을 선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내 합리화된 마음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누구처럼 불통, 독단이 되기 마련입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굳건한 믿음으로 정치를 하는 분들.
인간은 이기적이고, 모순적이기에 당신들의 모순적 결과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좀 부끄러운 줄 아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다음 행동이 그나마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습니다. 모순의 관대함을 아무곳에나 적용시키지 말길 바랍니다.
청정지역 책톡 블로그에 정치인들이 방문하지 않을테니, 요즘 유행하는 문자라도 한통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저부터 과정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겠습니다.
다음주도 여전히 시험기간의 핑계가 머릿속을 맴돌겠지만, 7차 집회는 잠깐이라도 나가서 힘을 보태려합니다.
또 다른 모순이 생길수도 있지만, 적어도 어제 집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들었던 부끄러움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 저 스스로에게는 조금 더 나은 행동이겠죠.
힘냅시다.
고맙습니다. 고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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