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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인권이야기)2.인권의 본질에 대한 탐구 ‘인권을 찾아서’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6. 3. 28.

솔수식인(率獸食人)이라는 말이 있다. 고깃간에 짐승의 고기가 가득 차 있는데 길가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짐승에게 사람을 먹인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성인 맹자가 한 말이지만,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나온 말이라 해도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의 미국은 솔수식인의 사회였다. 빈자들이 집조차 구하지 못해서 노숙할 때, 신문에는 15천만 달러짜리 개인용 여객기를 사라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이토록 1%에게 편중되어 있던 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월가 점령시위였고, 그들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바로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였다.

 

 

 

<책 표지 (출처:네이버 책 정보)>

 

 

인권을 찾아서는 월가 점령시위와 그 사상적 기반이 된 에셀의 책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에셀은 현실에 대한 해법으로 인간의 존엄이니 자유니를 말하는, 일견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세계인권선언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논하는 사람 중에 세계인권선언에 주목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라도 세계인권선언이 어떤 내용인지, 왜 에셀이 그토록 중요시 여겼는지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이제 와서 세계인권선언인가. 어떻게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가. 저자는 그 답이 원초적인 차원에서의 정의에 대한 옹호, 불의에 대한 거부라고 말한다. 즉 원초적·본질적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작중에 나치에 대한 사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물론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측면도 있다.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의 인권유린에 대한 반성과 경계가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계기였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나치일까? 위안부 동원이나 남경대학살 등 일본제국이 저지른 행위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답은 나치의 특수성에 있다. 나치는 철저히 도구적 합리성, 즉 목적을 생각지 않고 수단에만 천착하는 합리성에 매몰된 집단이었다. 유대인들을 모으고 관리하는 방법에 있어서 그들이 취한 수단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한 인종 자체를 절멸시킨다는 그들의 목적은 더 없이 비합리적이다. 나와 다른 이들과의 공존이라는, 인간사회의 본질을 망각한 결과 그토록 잔혹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형이 집행된 후 인민법정은 크나우프의 부인에게 사형집행 비용에 대한 청구서를 보냈다.....(중략)...... 남편이 처형당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처형에든 비용까지 가족이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본문에서

 

크나우프 부인의 사례는 본질을 망각한 나치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작사가인 크나우프는 히틀러를 비꼬는 곡을 지었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슬픔에 잠긴 크나우프 부인에게 나치는 한 장의 청구서를 보낸다. 사형언도 비 300마르크·유치장 시설이용료 44마르크 등의, 크나우프의 사형집행에 들인 비용을 청구하는 내용이었다. 사회 구성원에 대한 보호라는, 법의 본질을 망각한 법 집행인 셈이다. 이런 행위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불행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주었기에, 나치의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사람들의 소박한 비전마저 자본과 경쟁의 이름으로 짓밟고 있다.” 결말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마저 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느 경제사상이 그러하듯이, 신자유주의 또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게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과 경쟁의 논리는 그것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작금의 신자유주의는 수단에 집착한 나머지, 더 나은 삶이라는 본질을 헤치고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세계인권선언의 기본에 충실하여 일견 따분해 보이는 내용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본질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다. 따라서 세계인권선언과 그로부터 발전된 인권의 담론들을 신자유주의의 대항마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이자, 이 책의 핵심내용이다.

 

 

 

 

 

인권이 대항마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의문이 든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외하곤, 인권의 문제는 사회·문화·시대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런 문제들을 하나의 통합된 이론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책에서도 인권문제를 보는 관점조차도 크게 4가지로 나뉘어져 있다고 언급된다. 그런 상황에서 인권이 신자유주의 같은 정교한 경제이론의 대항마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인권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환기해준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세계인권선언은 더 나은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본질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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