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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인권이야기) 1. 대안학교 출신 B와의 인터뷰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6. 3. 25.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의 의사표시권을 보장한 UN아동권리협약 121항의 내용이다. 18세 이하 모든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한 이 협약에는 세계 193개국이 비준하였고,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2010년 학생들의 기본권을 보장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반발 또한 많다. 2010년 이후 교권침해 사건이 터지면 항상 학생인권조례에 화살이 돌아가곤 한다. 주된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약화되어 교사들이 학생들을 통제 못하고 있다. 아직 미성숙해서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니까 통제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미성숙한 존재인 학생들에게는 의사표시권이 아닌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정말 교권 하락을 불러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 이를 뒷받침 할 만 한 통계나 자료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가능성은 있다. 5년 남짓한 시간은 유효한 자료가 나오기에는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학교의 사례를 살펴보면 어떨까. 공립 대안학교가 건립된 것이 2002년이고 비인가 학교 중에는 그 전에 설립된 곳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한참 전부터 학생들의 의사표시권을 보장한 대안학교의 사례라면, 유효한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이것이 내가 B(24)와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이다. 현재 서울의 대학에 재학 중인 그는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나온 사람이다. 평소 솔직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그였기에 좋은 인터뷰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지난 일요일 점심 무렵, 한양대 역내 카페에서 그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대안학교의 시초인 영국의 서머힐 스쿨의 모습. 실제로 초기 한국의 대안학교들도 이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다.(출처:위키피디아)>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학교에 오래 앉아있는 거 자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자 부모님이 직접 대안학교를 알아봐 주셨다. 일반 중학교 가서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거 보다는 재밌어 보였기에, 부모님 말씀에 따르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녀가 대안학교에 간다면 말리는 부모님들이 대다수일 텐데 특이하신 거 같다. 부모님에 대해서 알려 달라.

두 분 다 서울 명문대 나오시고, 운동권이셨다. 다만 앞장서는 타입은 아니셨고 뒤에서 조용히 지원만 하셨다고. 아버지는 현실적인 편이시고, 어머니는 좀 더 이상주의자시다.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를 좀 더 닮은 거 같지만. 평소에는 두 분 다 나를 방임하신다.

다만 중요한 건, 일례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는 다른 부모님들과 비슷하시다. 좋은 대학을 가길 원하셨으니까. 일반 고등학교에 간 후 2학년이 되었을 때, 도저히 학교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와 달리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사회생활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부모님들도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로 많이 고민하셨던 거 같다. 나는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이 일반학교의 그것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하지만.

 

-대안학교에 대해 알려 달라. 일반적인 학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

보통 학생들이 처음 대학교에 왔을 때 받을 인상과 비슷하다. 수업도 스스로 찾아서 들어야 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말을 잘 해야 한다. 특히 자기표현을 잘 해야 했다. 글 쓰고 토론하고 체험 학습 가는 나날이었다. 글은 주로 독후감을 썼다. 수업은 일반 학교랑 마찬가지로 문학, 수학, 사회 등에 목공이랑 농업같이 직업 체험이 더해진 정도였다. 수학 같은 과목에서도 관련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토론은 그때그때 달랐다. 책이든 시사든 뭐든 가능했다. 다만 저학년이라 아직 토론에 익숙지 않은 경우에는 복잡하지 않은 시사현안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체험 학습은 주로 역사탐방이었다. 서대문 형무소나 청계천에 갔던 게 기억난다. 개중에서도 당시 화제가 되는 사건과 연관된 장소를 가는 경우가 많았고.

 

-목적성을 가진 학교는 아니었나? 생태 교육을 중시하는 학교나 사회 참여의식을 고취하는 학교라는 식으로.

특별히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재학 중에 한 번 학교가 크게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학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토론이었는데,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대표 모두가 모여서 이루어졌다. 잘 합의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랬으면 휘청거렸다고 말하지 않았을 거다. 그 때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나왔다.

 

-대안학교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어떤가? 대안학교 출신이라는데 편견을 가지지는 않나.

어른들의 경우는 그렇다. 나를 깡패 취급했다. 특히 친척 분들. 내가 학교에 적응 못할 정도여서 대안학교에 갔다고 여겼다. 교육제도의 문제는 생각도 못하고 나의 문제라고만 봤다.

친구들의 경우는 달랐다. 그냥 좀 특이한 경력 정도로 생각했다. 다만 일반 학교를 나온 자신들과는 좀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있었다. 나는 대화에서 나의 의견을 말하는데 꺼리지 않고, 수업 중에도 선생님의 질문에 잘 대답하는 편이었다. 그런 점이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 원인이었던 거 같다.

사실 주위보다도 대안학교 출신 학생 본인들이 자신들의 출신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자부심과 열등감이 섞여있다고나 할까. 앞서 말했듯이 자신을 표현하는 걸 중요시하기 때문에, 대안학교 출신들은 말이나 글 솜씨에서 일반 학교 학생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내가 더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는 일반 학교 학생들을 더 쳐주니까 열등감 또한 느끼게 되는 거다.

 

-대안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간에 나왔다니 아무래도 비판적일 거 같은데.

싫은 건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에게는 일반학교보다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 아이가 원한다면 보낼 용무도 있다. 다만 문제점도 많은 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와 방종 사이의 불분명함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자유롭다. 나이가 많던 선생 신분이던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게 대한다. 교칙도 거의 없다. 술이랑 담배만 금지하는 정도다. 문제는 처벌이다. 교칙을 어긴 학생을 처벌할 때도 아이들과 선생들이 모여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처벌이 제대로 안 이루어질 때가 많다. 아무래도 같은 반 친구라고 온정적으로 될 때가 많으니까. 예를 들어 일진 같은 아이들이 상습적으로 악질적인 행동을 해도 내보낼 수 없다. 걔들 주도하에 힘의 강약에 따른 서열이 생겨버린다. 교사와 학생은 평등한데 정작 학생들 간에는 평등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진로 문제도 있다. 스스로 정한다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문제다. 일반 학교처럼 강제로 공부를 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생각 없이 놀기 만하게 된다. 다만 다른 대안학교도 그런지, 실은 우리 학교만의 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본인이 대안학교를 운영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거 같은가?

방향성이 뚜렷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그래야 중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개선은 필요하다. 자잘한 규칙 같은 건 얼마든지 바꿔도 좋다.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지는 경우는 적어야 한다는 거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슷한 걸 추구하는 학교를 다닌 사람으로서 한 번쯤 생각해봤을 거 같은데.

학생에게 네겐 인권이 있다라고 알려주는 차원에서는 좋은 제도라고 본다. 다만 일방적으로 시행된 제도라는 게 문제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는 주지 못했다고 본다. 남이 준 자유라고나 할까? 이래서는 학생들 스스로 자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만드는 거야 그렇다쳐도 적어도 시행하는 데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어느 학교에서 학생인권 조례를 시행할지, 시행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지에 대해 정할 때 회의에 학생대표를 참여시키고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식이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결국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된다는 명분 앞에 인권은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학생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입시라는 프레임을 깨고 인권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근대 일본의 기본권은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유학생 출신의 엘리트 관료들이 자신들이 본 서구 제도를 그대로 도입한 결과이다. 쉽게 주어진 것이기에 빼앗기기도 쉬웠다. 대공황 이후 군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자국민의 기본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하고 무시해버렸다. 권리의 소중함을 모르던 일본인들이었기에, 별다른 저항도 없던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학생인권이 자유를 불러왔는지 방종을 불러왔는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일방적으로 건네줬을 뿐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학생들이 근대 일본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B가 대안학교에서 겪은 경험과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그의 생각 모두가 이점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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