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매주 다양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여기는 감질클럽입니다.
방송이 끝난 뒤

토크빌의 한계- 중산층의 힘에 대한 무지 (관련도서-미국의 민주주의)

by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2016. 2. 17.

2차 세계대전 중의 일이다. 당시 일본제국은 한창 고민에 빠져있었다. 전쟁에 필수적인 자원인 석유와 고철이 고갈되고 있었다. 주요 수출국이었던 미국이 공급을 중단했던 탓이었다. 미국은 중국침략과 독일과의 동맹을 중단할 때까지 공급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이미 중국과 전쟁 중이었던 일본에게 자원부족은 생사를 가를 문제였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을 손에 넣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 한 사람이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해군 장성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었다. 그는 과거 미국 유학 중에 겪었던 일화 하나를 말해주었다. 한참 길을 가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버렸다. 정비소는커녕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서 난감해하던 터였다. 운 좋게도 차 한 대가 지나가 길래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도 차는 멈춰 섰고 운전자가 내렸다. 앳되어 보이는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야마모토의 차를 살펴보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이 순식간에 수리해냈다. 그녀 덕분에 야마모토는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었다.

다른 장성들은 의아해했다. 그 일이 전쟁과 무슨 상관인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야마모토는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를 정비할 정도로 기계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지나가던 아무 사람이나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나라에 이길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장성들은 할 말을 잃었으나, 계획을 철회하진 않았다. 결과는 야마모토의 예측대로였다. 초반에는 기습으로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곧 질과 양이 모두 우수한 미군에게 압도당해버렸다. 그렇게 일본제국은 멸망당했다.

 

야마모토의 일화가 시사 하는바는 명백하다. 미국의 힘은 우수한 시민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미국의 풍부한 자원과 높은 인구를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가

명목상 GDP (억 달러)

인구 (백만)

최저생활자 (%)

가용 GDP (억 달러)

독일

244

67

37

153

오스트리아

101

51

70

30

영국(본토)

226

46

12

199

영연방

78

20

32

53

프랑스

139

40

41

83

러시아

258

173

80

51

이탈리아

91

36

59

37

미국

538

122

4

512

<1차세계대전 당시 주요 국가들의 국력을 정리한 표> (출처: daum 카페 this is totalwar)


보다시피 미국의 인구수는 압도적이지 않다. 러시아보다 5천만 명이 적다. 국내총생산도 마찬가지다. 1등이긴 하지만, 영국이나 러시아의 2배를 못 넘는 정도다. 주목해야 할 지표는 최저생활자의 비율이다. 다른 나라들이 두 자릿수를 넘어 갈 때, 미국은 채 5%도 되지 않는다. 즉 인구의 대부분이 중산층내지는 적어도 일정 수준의 생활을 영유하는 시민들이라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실질적인 GDP는 압도적인 수준이다. 인구가 더 많은 러시아의 10, 당대 최강국이던 영국과 그 식민지를 합친 수치의 두 배나 된다.

이러한 미국의 힘이 가장 명백히 드러난 사건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은 일본을 상대하는데 국력의 절반도 채 사용하지 않았다. 대다수는 흔히 랜드리스라 불리는, 연합군에 대한 군수물자 지원에 사용되었다. 그러고도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질 좋은 병력과 무기를, 몇 배나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인구와 자원만 많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시민들 대다수가 숙련된 인력인 동시에 높은 수준의 납세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가의 기반이 중산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 국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되돌아보기 시작하면 그들은 전에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부족사태를 알아내게 되며 이와 같은 긴급한 처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재원에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어떤 나라의 문명이 발달한 것에 비례해서 공공부담은 증가하며 지식이 확산하면 할수록 세금이 늘어나는 사태가 생긴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288p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아무래도 토크빌은 국가가 시민을 위해 돈을 많이 쓰는 사태를 경계한 것 같다. 오늘날 시민에 대한 복지가 국가 재정을 파탄 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논조이다.

토크빌은 알지 못했다. 국가가 시민에게 쓰는 비용보다, 그 돈으로 부유해진 시민들이 창출하는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토크빌의 한계이되,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는 근대 직전의 지식인이었다. 아직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지 못했던 시대다. 그가 보아온 시대상은 상당부분 농경사회의 그것이었을 터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산업사회에 비해 중산층이 낼 수 있는 이익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복지에 투자하는 비용 대부분이 수익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토크빌이 반세기 정도 더 뒤에 태어났다면 아마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인 상당수가 자국 정부를 신뢰한다는 점을 미국의 힘으로 꼽을 정도로,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지금 그의 저서를 보는 사람들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by 고시낭인

 

댓글